원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감독: 이누도 잇신(2003년, 일본)
등장인물: 이케와키 치즈루(조제), 츠마부키 사토시(츠네오), 우에노 주리(카나에)
배경: 21세기, 일본
상영 시간: 116분 (15세 관람가)
장애인 여성의 사랑과 홀로서기
‘세계인권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동등하게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정치적 견해 등에 관계없이 어떠한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언명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장애인에다가 빈곤 계층 여성이기까지 한 경우,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에는 이중 삼중의 장벽이 놓여 있을 게 뻔합니다. 아니, 어쩌면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일부터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험난한 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한국 영화 <오아시스>(이창동, 2002)와 마찬가지로 다리가 불편한 뇌성마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장애인 이동권을 정치적 구호나 사회 운동의 차원이 아닌 사랑의 표현 수단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푸른빛 도는 정지 화면들이 스치듯이 지나갑니다. 이것은 주인공 츠네오의 회상 속에 존재하는 조제와의 추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분홍빛 파스텔톤의 그림은 조제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파리의 에펠탑을 배경으로 긴 머플러를 두른 소녀가 한쪽 다리가 짧은 토끼 인형을 끌고 가는데, 이 토끼는 조제의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츠네오는 용모가 수려하고 성격이 활달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대학생입니다. 마작 게임방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가던 중, 유모차를 끌고 가는 할머니와 마주칩니다.
담요로 덮어 가린 유모차 안에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의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소녀의 본명은 구미코이지만, 스스로는 조제(그녀가 즐겨 읽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주인공 이름)라 칭합니다. 조제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는 사람들 눈을 피해 새벽에만 조제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시켜 줍니다. 바깥세상을 제대로 접할 수 없는 조제는 벽장에 틀어박혀 할머니가 주워 온 책들을 통해 세상 구경을 합니다.
츠네오는 호기심 반 연민 반으로 다시 한 번 조제의 집을 찾아갑니다. 방문을 연 순간, 얼굴
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조제를 보고 츠네오는 깜짝 놀랍니다. 조제는 산책을 하다가 부랑자에게 공격을 당해 얼굴을 다치고도 여전히 태연한 모습으로 "여러 가지 보아야 할 게 너무 많아! 꽃이랑, 호랑이랑……."이라며 '이동의 의지‘를 표명합니다.
둘은 함께 요리를 하고 책 얘기를 하며 가까워집니다. 츠네오는 조제가 좋아하는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의 속편 『멋진 구름』을 헌책방에서 구해다 줍니다. 조제는 책을 읽으며 빙그레 미소짓습니다. 조제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본 츠네오는 매우 뿌듯해하고, 조제에게 한발 더 다가선 것을 느낍니다.
할머니가 낮잠이 든 사이, 츠네오는 유모차 뒤에 스케이트보드를 매달고 조제를 태운 다음 거리를 달립니다. 이때 거리의 풍경들은 영화의 첫 장면처럼 ‘스틸 이미지' 로 처리되는데, 이는 난생처음 보는 한낮 풍경을 놓치지 않고 기억에 담고 싶은 조제의 마음을 반영한 연출로 보입니다. 결국 비탈길에서 굴러 넘어졌을 때도 조제는 누운 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보며 “저 구름을 집에 가져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점점 더 조제에게 마음이 끌리면서 츠네오는 조제를 위해 장애인을 위한 무료 집수리를 신청합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이 좀 더 가까워지려는 시점에서, 츠네오의 대학 친구이자 사회 복지사 지망생인 카나에가 조제의 집을 견학하러 옵니다. 건강한 다리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카나에의 관찰 대상이 되자 조제는 상처받습니다. 그날 저녁 츠네오는 사과를 하러 다시 조제를 찾아오지만, 할머니는 “우리 손녀처럼 아픈 아이는 자네와는 어울리지 않네!”라며 더 이상 손녀딸을 만나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츠네오는 조제를 잊으려 카나에를 만나고 취업 준비를 하는 등 분주히 지내지만, 우연히 조제 할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곧바로 조제에게 달려갑니다. 두 사람은 얼어붙었던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나눕니다. 다음 날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에 갑니다. 호랑이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동물이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와서 보려 했다고 말하는 조제에게 츠네오는 더욱더 애정을 느끼고, 마침내 조제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됩니다.
함께 산 지 일 년 후 이들이 떠나는 여행 시퀀스는 조제의 이동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본래 조제를 데리고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갈 생각이었지만, 츠네오는 꽉 막힌 도로에서 답답함을 느끼면서 왠지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도 주저하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조제로선 태어나서 첫 번째 여행으로, 장거리 '이동'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들떠 상기된 표정입니다. 조제는 책 속에서 보았던 바다가 아니라 실제의 바다를 보고, 듣고, 느낍니다.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던 두 사람은 호텔 '물고기의 성'에 들어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둘은 결국 츠네오의 집까지 가지 않고 돌아오며, 조제는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의 내용처럼 이별의 순간이 왔음을 감지하고 담담히 츠네오를 떠나보냅니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혼자 전동 휠체어를 끌고 나가 장을 보고, 물고기를 석쇠에 구워 자신만의 만찬을 준비하는 조제의 담담한 표정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장애인 - 비장애인의 경계가 무색할 만큼 조제의 당찬 태도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장애인을 그리는 시각에 있어서 이전의 영화들보다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세계인권선언문
2차 대전 후 유엔은 인권위원회를 설립하고 2년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문을 선포했습니다. 이 선언문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의 기본권에 대해 명료하고 포괄적인 전망을 제시한 글입니다. 주된 내용은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제1조), 생명과 자유와 신체의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고(제3조), 고문 또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나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되며(제5조), 어떠한 차별도 없이 평등하게 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제7조) 입니다.
2. 스틸 이미지 till image
정적인 그림이나 사진으로, 무언가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대상을 정확히 포착할 때 사용합니다. 조제가 츠네오의 도움으로 대낮에 외출하는 장면의 스틸 이미지들은 난생처음으로 본 밝은 세상의 경이로움을 붙잡고 싶은 조제의 심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관객의 주의를 끌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400번의 구타>(프랑수아 트뤼포, 1959)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스틸 이미지가 강력하게 부각되었습니다.
3. 가족, 친구 혹은 주위사람들 중에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있다면 이동의 고통에 연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세요.
4. 조제가 구미코라는 본명 대신 조제라고 불리길 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구미코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 준 현실의 이름이지만, 조제는 구미코가 꿈꾸는 삶의 주인공입니다. 만일 조제의 현실이 만족스러웠다면 구미코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별 불만이 없었겠지만, 벽장에 틀어박혀 책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던 조제였기에 다른 삶을 갈망하고 다른 이름을 원한 것입니다. 성도 그렇지만, 이름이란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고 부모님이 지어 주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어려서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도(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아니면 이혼 후 버려졌는지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어머니'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 한 점에서 후자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른 아이와 달리 매사에 독립적이었던 조제는 분명 자신이 고른 이름인 '조제’로 불리길 원했을 것입니다.
5. 스스로 몸을 돌보기 힘든 중증 장애인과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길잡이: 정부는 저상 버스, 리프트 등 물리적 이동 시설 확충 외에도 2007년부터는 활동 보조 서비스를 시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전시 위주의 행정이라는 지적이 많고, 여러 가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참고로 한국의 장애인 예산은 선진국의 1/10에도 못 미치는 실정입니다). 소수자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히기 마련입니다. 인권 문제는 강자와 다수 집단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규정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존중받고 보장되어야 할 인권을 지닌 사회 구성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인도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여행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애인의 이동권이 확보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의 인권 신장을 위해 이처럼 다각도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장애인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비장애인의 담담한 시선 역시, 역설적이지만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장애인, 비장애인을 구분할 게 아니라 서로를 그저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당신이었다면 혹은 '당신이 나였다면'으로 역지사지해서 생각해 보고 “내가 당신이라도 그랬을 거예요!"라며 응원해 주는 것은 어떨까요?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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