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여균동 (2003년, 한국)
등장인들: 김문주, 가족, 이웃집 아주머니, 친구, 행인, 경찰
배경: 21세기, 한국
상영 시간: 14분 (12세 관람가)
장애인 이동권은 인권 (자유 평등 · 존엄)의 기본
여섯 개의 시선은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옴니버스 영화로, 현재 한국의 인권 차별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임순례 · 정재은 · 박광수 · 박진표 · 박찬욱· 여균동 등 여섯 명의 감독이 인권이라는 주제에 각자의 방식으로 접근하여, ‘그녀의 무게’ ‘그 남자의 사정' ’대륙횡단‘ '신비한 영어나라' '얼굴값'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이렇게 여섯 편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중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선 굵은 목판화처럼 투박하게 관객에게 장애인의 현실을 각인시킵니다.
대부분의 상업영화에서 장애인에 대한 카메라의 시선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비장애인과 맞먹는 성취, 즉 '인간 승리'나 ‘가족애'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대륙횡단’은 장애인의 있는 그대로의 삶과 권리 찾기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영화라 생각됩니다. 여균동 감독은 사전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연습이다. “관객들이 보고 그들 안에도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도록 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감독은 수많은 장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본 후, 그들이 일상에서 겪은 일들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상적인 사연들을 짤막하게 나누어 찍은 이유에 대해, 감독은 이 땅의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을 한 에피소드로 국한시킬 수는 없으며, 총체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대륙횡단'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실제 장애인이며, 특히 뇌성마비 1급인 김문주 씨는 실명 그대로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영화는 김문주 씨 혹은 김문주 씨와 같은 장애인들이 경험한 상황과 느낌들을 ‘18년 만의 외출' ’이 감정을 알아?' '친구' '이력서' '약혼식' ‘음악감상 시간' '횡재' '내가 본 것' '예행연습' '셀프 카메라' '대륙횡단' 등의 소제목을 달아 열세 편의 에피소드로 연결해 냈습니다.
외출하려고 힘들게 목발을 짚고 나와 현관문을 잠그려다 열쇠를 떨어뜨린 순간, 이웃집 아주머니가 달려와 "어머나, 힘든데 어디 갔다 오는 모양이로구나? 문주야, 내가 도와줄게. 교회에도 꼭 나오렴!"이라며 도로 집 안으로 밀어 넣는 장면이라든지(18년 만의 외출), 마음 속으로 좋아하던 여자를 만나러 나가지만 차마 고백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장면(‘이 감정을 알아?'), 친지의 약혼식에 가려고 온 가족이 부산을 떨며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어머니가 문주에게 밥이나 잘 먹고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약혼식) 등은 장애인이 스스로 때문이라기보다 주위 사람들 때문에 고립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지하철 출입구에서 〈소녀의 기도〉 멜로디와 함께 느릿느릿 움직이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장애인의 모습과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승객의 모습을 한마디 대사도 없이 대비시킨 장면(음악감상 시간)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이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한 무언의 웅변입니다. 그리고 목발을 짚고 지하보도에서 밖으로 올라왔다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지나가던 사람들이 거지에게 동냥하듯 동전을 던지는 장면('횡재')은 '이동의 물리적 어려움도 힘들지만 주위의 무례한 '시선'이 더 장애인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생각케 합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시위로 잡혀 간 친구를 생각하며 주인공이 집 앞 도로에서 홀로 목발을 짚고 차도를 왕복하는 장면(예행연습) 그리고 셀프 카메라로 비틀린 발을 찍으며 “이 못생긴 발은 나에게 고통을 주지만 나는 이 발로 그곳을 건널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셀프 카메라')은 자신의 불편한 처지를 인정하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주인공의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결말 부분, 광화문 네거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대각선으로 도로를 건너는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자동차와 사람들을 부감으로 잡아 낸 장면( 대륙횡단')은 앞의 모든 상황들을 아우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휠체어를 탄 채 1인 시위를 하며 "나 갈래! 나 갈 거야!"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교통경찰의 호각 소리에 묻히는 마지막 장면은,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감옥살이나 매한가지라는 어느 장애인의 말을 실감케 합니다.
1. 장애인 이동권
일반적으로 접근권과 함께 논의되거나, 접근권의 하위 권리로 이해됩니다. 접근 권이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대등하게 교육 · 직업 · 문화를 향유하고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원하는 공간에 접근하는 데 제약을 받지 않을 권리입니다. 따라서 장애인 이동권이란 단지 교통 시설의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 보장의 문제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2. 부감
본래 높은 곳에서 굽어 내려다본 것처럼 그리는 회화 기법으로, 새가 내려다본 모습 같다고 조안각(bird's eye view)'이라고도 합니다. 부감으로 찍은 화면은 마치 초월적 존재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는데,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사건이나 앞으로 전개될 암울한 상황을 예고할 때 주로 쓰입니다. <샤이닝>(스탠리 큐브릭, 1980)의 오프닝 시퀀스와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의 판문점 팔각정 장면, <번지 점프를 하다> (김대승, 2001)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부감 기법이 쓰였습니다.
3. 거리에서 장애인과 마주친 적이 있나요?
길잡이: TV나 영화에서 말고는 막상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잠깐, 바로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학교, 놀이동산 극장, 미술관 등 일상적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만날 수 없는 것일까요? 이 의문에 대한 해답 역시 장애인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통해 유추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니, 이런 현실이 바로 장애인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아톤> (정윤철, 2005), <사이먼 버치> 마크 스티븐 존슨, 1998), <포레스트 검프>(로버트 제멕키스, 1994) 같은 작품들은 주로 장애를 잘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이룬 개인의 영웅적 면모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나의 왼발> (짐 셰리든, 1989), <기적의 가비> (루이스 만도키, 1987), <프리다〉(줄리 태이며, 2003), <샤인> (스콧 힉스, 1996)은 장애를 예술적 승화로 이끌어 간 개인에 대한 영화들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레인 맨>(배리 레빈슨, 1988), <니키와 지노> (로버트 영, 1988), <아이 엠 샘>(제시 넬슨, 2001) 같이 가족간의 치유와 화해로 해피엔딩을 맞는 영화가 주류를 이룹니다. 또한 〈안녕하세요 하나님>(배창호, 1987), <제8요일>(자코 반도르말, 1996), <길버트 그레이프〉(라세 할스트립, 1994), <오아시스> (이창동, 2002),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2004) 등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편견을 부각시키며 담담하게 장애인의 일상을 그려 낼니다.
4.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 혹은 장애인 자신이 느끼는 차별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한국의 장애인은 1960~1970년대 개발 독재 시대의 산업 역군에도 끼지 못했고, 1980년대 군부 독재 시대에는 생색내기용 정책에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이중 삼중으로 소외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 사는 비장애인 상당수는 식당에 가면 '아무거나‘ ’빨리 되는 걸로‘ '통일 해 주세요!’ 라는 말을 다반사로 합니다. 이렇게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무취향과 조급증은 비장애인과 다르게 그리고 '느리게' 살고 있는 장애인들을 은연중에 차별하고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문화가 인기입니다. 하지만 삶의 질은커녕 최소한의 권리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는 현실에서, 장애인이 피부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차별은 과거보다 훨씬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고, 문화를 향유하는 일과 그 바탕이 되는 이동권은 장애인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건입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은, 굳이 인권선언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어느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충족되어야 할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4. 장애인 이동권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길잡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겪게 되는 차별은 장애인의 개인적·사회적 욕구 실현을 원천 봉쇄합니다. 친구나 애인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싶어도 이동 수단이 없고, 구직 활동을 할 수가 없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교육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하려 해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따라서, 장애인 이동권의 박탈은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동은 곧 사회에 대한 참여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5. 장애인 시위대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이나 버스를 점거하는 행위는 정당한가요? 만약 내가 점거된 버스나 지하철의 승객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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