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해영 · 이해준(2006년, 한국)
등장인물: 류덕환 (오동구), 이상아(동구 엄마), 김윤석(동구 아빠), 백윤식(씨름부 감독), 이언
(씨름부 주장), 박영서(종만), 초난강 (일본어 선생님), 문세윤 · 김용훈 · 윤원석(씨름부 삼인방)
배경: 21세기, 한국
상영 시간: 116분 (15세 관람가)
시나리오 자문: 김비
천하장사처럼 씨름을 하고 마돈나처럼 춤을 추는 소년의 고군분투 정체성 찾기
장애는 말할 나위 없고 피부색, 인종, 국적, 나이, 성별, 외모, 학벌, 이념 등 차별의 근거가 많기도 한 우리 사회, 이 모든 잣대들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천하장사 마돈나>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편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성적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시종일관 따뜻하고 밝게 풀어냅니다. 주인공이 성 정체성을 찾아내고 그런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천하장사 마돈나>는 더욱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주인공 동구는 어릴 적부터 엄마 립스틱을 훔쳐 바르고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이란 노래를 따라 부르던 소년입니다. 권투 챔피언이었던 아버지는 이제 건설 현장에서 굴착기 운전을 하지만, 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음주와 폭력을 일삼는 일그러진 가부장의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 어머니는 열일곱 살에 동구 아버지를 만나 동구를 낳았지만, 동구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남편을 떠나 홀로 주경야독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합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들 동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응원해 줍니다.
동구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성전환 수술을 하기 위해 틈틈이 항구에 나가 잡역부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춘기가 되어 일본어 선생님을 짝사랑하면서 여자의 몸으로 변신하려는 의지는 더욱 커져 갑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폭행 사건을 일으켜 어렵게 모은 수술비를 합의금으로 다 날리게 되자 동구는 친구 종만을 따라 씨름부에 들어갑니다. 전국 씨름 대회에서 우승하면 500만 원이라는 거액의 장학금이 나온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기 때문입니다.
동구를 보자마자 감독은 "소질 있어 뵌다. 오동구란 이름도 소질있네!" 라고 말하지만, 거친 남자들의 공간에 익숙지 않은 동구는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무표정한 연습 벌레인 씨름부 주장 박준우는 키도 작고 여려 보이는 동구를 처음부터 못마땅해하는 눈치입니다.
동구는 샅바를 스카프처럼 머리에 두르고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거울을 보다가 주장에게 들켜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씨름부 회식 자리에선 여성 댄스 가수 렉시의 <애송이>라는 노래를 현란한 춤과 함께 선보여 선배들을 당황케 합니다.
씨름부 선배들은 거구에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사실은 매우 섬세하고 천진난만한 사람들로, 동구에게 자기들이 씨름을 가르쳐 줄테니 그 대신 속성으로 춤을 가르쳐 달라 조릅니다. 선배들과의 연습으로 유연성, 버티기 등 자신에게 잠재된 소질을 발견한 동구는 헌책방에서 씨름 교본을 뒤져 밭다리, 배지기, 뒤집기까지 독학으로 연마하며 자신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연모해 왔던 일본어 선생님을 향한 “제가 당당히 선생님 앞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고백은, “네 부모가 너를 그렇게 키우던?" 이라는 싸늘한 대답으로 돌아옵니다. 동구의 씨름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천하장사를 넘보지만 마돈나가 되는 길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씨름 대회 날, 동구는 아버지 앞에 원피스를 입고 나와 ‘이게 진짜 내 모습’이라며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거대한 굴착용 디퍼를 동구의 머리에 내려찍을 듯이 바싹 들이대지만 동구는 피하기는커녕 두 팔을 벌린 채 눈을 감습니다. 결국엔 굴착기에서 내려온 아버지가 주먹을 날리는 순간에도 그대로 구타를 당하면서 아버지를 응시할 뿐입니다. 격분한 아버지가 동구를 구석에 몰아넣고 난타하기 시작한 후에야, 동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버지의 몸을 들어올려 처음으로 ‘뒤집기'를 성공시킵니다.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동구와,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잡아낸 이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한동안 넋이 나가 거리를 방황하던 동구는, 마돈나의 환영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경기장으로 달려갑니다.
동구는 한 경기 한 경기 침착하게 상대방을 제쳐 나가고, 마침내 박준우와 결승에서 맞붙습니다. 감독은 둘을 향해 “너희들, 행복이 뭔지 아냐? 지금처럼 심장이 쿵쾅쿵쾅거리는 거, 이게 행복이야! 가서 원없이 박 터져 봐!" 라고 주문합니다.
감독이 무심코 동구에게 던졌던 '이름 한번 믿어 보라.'는 말이 마법의 주문처럼 작용한 것일까요? 동구는 버티기, 힘 빼기에 이어 급기야 씨름 교본에도 없는 웃기기 기술로 상대방의 균형을 흐트립니다. 공중으로 몸이 쳐들린 위기의 순간, 애써 힘을 주며 제압하려 하지 않고 온몸에 힘을 빼며 버터 내어 역전승을 거둔 동구의 모습은 경기 전 아버지와의 싸움 장면이 그랬듯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진리를 역설적으로 보여 줍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장을 한 동구가 씨름부 친구들이 응원하는 가운데 〈라이크 어 버진〉을 부르며 무대 위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천하장사와 마돈나, 두 가지 바람을 모두 성취하게 된 주인공 오동구는 남과 다른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게 누구든 얼마나 다르든, 모든 사람의 인권은 저마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1. 동구가 처음 씨름부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할 때, 푸른색과 붉은색의 샅바를 한데 넣고 세탁하다가 모든 샅바를 보라색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의 주제와 관련하여 이 장면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세요.
길잡이: 남성적 스포츠인 씨름의 '천하장사와 섹시한 여성의 상징인 가수 마돈나'를 붙여서 제목을 지은 감독의 의도대로, 〈천하장사 마돈나>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명칭의 부딪힘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전달합니다. 동구가 붉은색과 푸른색을 섞어 보라색으로 만든 것은 이분법적인 사회 통념을 깨고 푸른색(남성성, 천하장사)과 붉은색(여성성, 마돈나) 모두를 성취하겠다는 잠재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낸 장면이 아닌가 합니다. 나아가서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주저앉지 않고 유연하게 현실에 용해되어 꿈을 이뤄 낸 동구 자신의 모습을 색의 합성을 통해 웅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남다른 면모 때문에 주목받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남과 다른 모습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질시를 받는 삶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차별을 받았는지 떠올려 보고, 어떻게 그 일을 극복했는지 되짚어 보세요.
길잡이: 주목과 질시, 우월감과 열등감의 기준은 바로 사회가 유포한 '표준'과 '정상'의 이미지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불리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인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남들과 같아지려 합니다. 하지만 동구는 남과 다른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씨름부의 회식 자리에서도 애창곡 (애송이를 부르며 당당히 여성성을 표출하며, 아버지 앞에서 커밍아웃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어머니의 말대로 '세상에 나아가 편견과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여정인지’ 뻔히 알면서도 당당하게 정체성을 표현하는 동구의 모습은, '다름'을 애써 감추고 피하려 드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3.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지 생각해 보고, 이들의 ‘다름’이 과연 ‘틀림’인지에 대해서 토론해 보세요.
길잡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대표적인 집단으로는 성적 소수자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와 장애인, 노인, 빈민, 이주 노동자, 혼혈인, 화교, 양심적 병역 거부자, 비전향 장기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신체적 · 문화적 이념적 이유로 남들과 구별되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나아가 집단적 차별의 대상이 된다 하여 소수자 집단(minority)이라고도 불립니다. 소수자 집단이라고 반드시 구성원의 수가 적지는 않습니다. 식민지에서 수가 많은 토착민이 수가 적은 통치자로부터 차별받는 경우가 그 예입니다. 소수자 집단의 존재는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집단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소수자는 역사적으로 권력의 주체였던 '백인 남성-어른- 이성애자-토박이 비장애인 – 고학력자 - 표준어 사용자'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유색인 여성 – 아이 - 동성애자-이주민 – 장애인 - 무지렁이 - 사투리 사용자'는 소수자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 두 집단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르다‘라는 말은 그저 '차이'를 뜻하지만, '틀리다'라는 말 속엔 '차별'의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틀린 것(차별)을 넘어 다른 것(차이)을 존중하는 자세는, 평화와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21세기에 꼭 필요한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윤희윤 / 『세상을 껴안는 영화읽기』 / 문학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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