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 오메테크섬
1. 그들이 가진 편견은 무엇인가?
흥미와 편견은 동전의 양면이다. 하나는 끌어당기고 다른 하나는 밀어낸다. 말하는 사람이 청중의 편견을 무시하면 재앙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조심하라, 편견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해가 없을 것 같은 세부 사항에조차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편견이 스토리텔링 기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을 몇 번이나 지켜봤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할 만한 것은, 이상하게도 편견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해 버린 괴물 같은 사나이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의 이야기다. 그는 증오라는 행동을 촉구함으로써 수백만 국민을 광란으로 몰아넣었다. 국민을 상대로 동맹국과 유대인, 집시, 장애인을 비롯해 아리안족의 우수성에 어울리지 않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편견을 조장하는 스토리를 만들어 전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인류를 상대로 저지른 악랄한 범죄 때문에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은 정반대의 의미로 히틀러나 제3제국과 관련된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가 조장했던 것만큼이나 강한 편견을 품게 되었다.
1997년 우리 회사는 <티벳에서의 7년> 개봉을 앞두고 이런 편견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다. 오스트리아의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 Heinrich Hare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그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장차 티베트의 영적 스승이 될 어린 달라이 라마를 만나 서구 문물을 가르치면서 가까운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하러의 영적 각성을 그린 이 이야기는 평화와 상호 이해 그리고 인류애를 보여 주는 강력한 증언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틀어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나치의 스와스티카 swastika 표장을 찬 모습이 딱 한번 나온다. 그것도 젊은 시절 제3제국에 굴복하기를 주저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린 장면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한 평론가가 이 한 장면을 무서운 상징으로 간주했고, 실제 영화는 한 장면도 보지 않은 채 <티벳에서의 7년>을 나치 영화로 분류해 버렸다. 유대계 언론매체들이 이 영화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했고, 우리 배우들이 실제 줄거리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한 컷의 이미지 조작의 위력을 이겨 낼 수 없었다. 스와스티카 표장을 찬 브래드 피트의 모습이 얼마나 강력한 편견을 몰고 왔던지, 우리가 전하려는 영화의 스토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쯤 후 나는 하와이의 내 집을 찾아온 마크 셔피로 Mark Shapiro 에게 <티벳에서의 7년> 이야기를 했다. 그는 미식축구팀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구단주 댄 스나이더 Dan Snyder 와 함께 톰 크루즈가 출연하는 2차 세계대전 영화 <발키리>의 제작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전 공개되는 사진에 포함된 톰 크루즈의 모습에서 만약 나치를 상징하는 표시가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우리가 당했던 것과 똑같은 편견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행히도 톰 크루즈가 나치제복뿐 아니라 애꾸눈 안대까지 한 사진이 언론에 흘러나가 이 영화가 나치 옹호 영화라는 잘못된 소문이 이미 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관객의 편견이 고개를 쳐들었고, 이는 박스오피스 수입에도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나의 편견에 불을 끼얹은 일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992년 소니 픽처스의 CEO로 일하던 시절, 나는 소니 코퍼레이션의 리더인 오가 노리오 및 미키 슐호프와 함께 소니 유럽 본부가 들어설 부지를 답사하러 갔다. 당시는 우리가 맨해튼에 소니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대규모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막 건설한 직후였던 만큼, 오가 회장도 최신식 부동산개발 계획에 푹 빠져 있던 시기였다. 그는 베를린에 중역실이 포함된 소니 본부를 짓고 인근에 아이맥스를 포함한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식당, 푸드 코트 등이 들어서는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건설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미 소니의 뉴욕 67번가 멀티플렉스 건설 계획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에, 그는 이번 일도 내가 맡아서 진행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베를린은 소니의 미래를 그려 가기에 완벽한 화폭이 될 것 같았다.
우리가 타고 간 회사 비행기는 항공 면허를 보유한 슐호프가 직접 조종했다. 비행기가 중소도시 공항에 착륙한 뒤 건물에 가까워질 때 보니, 짧은 활주로에 어울리지 않게 지붕 처마가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혹시나 이 건물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의아하다고 했더니, 오가 회장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보통 공항이 아니고 템펠호프 Tempelhor라고 아주 유명한 공항이오, 히틀러가 30대 시절에 지은 건물이라오!"
"히틀러요? 대단하네요." 내가 말했다. 별로 반가운 이름이 아니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오가 회장은 내가 빈정됐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소니 센터뿐이었다. 과거 전쟁터였던 베를린의 잿더미 위에 빛나는 기술의 요새를 짓는 비전 스토리 말이다.
몇 분 후, 우리는 메르세데스벤츠 본사 건물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드넓은 부지 위에 서 있었다. 오가는 아직도 자랑거리가 남았다는 듯이, 소니가 벌써 이 부지에 대한 구매 계약을 완료했다고 말했다. 급속하게 팽창하는 도시의 한복판을 차지한 이 광활한 땅을 말이다. 우리가 달성하려는 성과를 생각하면 이곳이 오히려 뉴욕보다 더 크고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정도였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이런 알짜배기 땅을 구하셨습니까? 원래 공원이었나요?"
오가는 그 공터 위에서 손을 내저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공원이 아니오, 1945년도에 여기는 유명한 장소였소. 이 아래에 히틀러의 벙커가 있었거든"
히틀러의 벙커요?"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잊고 싶은 과거의 스토리가 뇌리를 스쳤다. "히틀러의 벙커 위에다 소니 본사를 짓겠다는 겁니까?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오가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버 씨, 당신의 직장은 일본회사요. 일본은 전쟁 당시 독일과 동맹 관계였소." 그러니까 지금, '나 오가는 히틀러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다. 피터 거버 당신은 도대체 뭐가 불만인가?' 이런 말인가?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에 꺼내지는 못했다. “회사의 장엄한 비전을 새롭게 보여 주는 곳으로, 어떻게 이런 최악의 장소를 골랐습니까?"
그때부터는 이곳이 대량학살의 주범이 웅크리고 있던 장소라는 생각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었다. 오가가 무슨 말을 해도 내 머리에는 히틀러와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만 가득 찼다. 당장 그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홀로코스트를 숭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프로젝트에 털끝만치도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치적 의사표시는 고작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나는 오가의 새로운 취미 활동과도 같은 이 프로젝트에서 발을 빼는데 성공했고, 이후로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물론 나의 그런 태도와는 상관없이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어, 그 땅에는 결국 총 19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소니 센터가 들어서서 2000년에 개장했다. 그러나 아직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다. 과연 오가 회장은 똑같은 스토리라도 내가 지지할 수 있게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오가 회장이 나의 히틀러에 대한 편견을 미리 알아차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해소했어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편견을 간단히 무시해버림으로써, 자신의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꺼내기도 전에 내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피터 거버 / 『스토리의 기술』 / 라이팅하우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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