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월의 나비

hope888 2022. 5. 30. 08:25

 

 

 나이가 들어서야 추억의 진미를 안다고 했던가.

내 벌써 종심(從心) 고개를 넘고 보니 지나온 날들에 대한 갖가지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가슴속에서 회억의 물결이 출렁일 때마다 나는 곧잘 아득한 세월의 강 저 너머로 홍안의 젊었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 누구인들 가슴 아린 추억거리가 한두 가지쯤 없을까만 참으로 삶과 죽음의 구획마저 가늠할 수 없었던 전쟁 마당에서의 회억만큼은 절실하지 못하리라.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야기된 6·25 전란이 한창일 때 나는 금강산이 내려다보이는 동부전선 최전방 고지에서 보병 소대장으로 참전했다. 아무리 무쇠처럼 단단한 젊은 몸이라고 하지만 몇 날 몇 밤을 공방전투 시달리고 나면 그야말로 온몸이 녹초가 되어 아무 데서나 곯아떨어지고 만다.

1952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간밤의 격전으로 피로에 지친 나는 잠시 참호 속에서 낮잠에 빠져있었다. 아니 그냥 졸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고막을 찢는 듯한 총소리가 들리더니 뒤미처 소대원 한 사람이 전사했다는 무전 보고가 왔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의 일이었다.

전쟁 마당에서야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날따라, 아니 오늘날 까지도 내 마음을 애절하게 에이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그 병사야 말로 절절한 심혼(心魂)의 감동으로 시를 쓴 시인이며, 마지막 선혈을 녹여 시어를 토해낸 격정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 남쪽 지방에는 이미 온갖 백화가 만발했을 때이건만 38선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전선 고지에는 아직 을씨년스러운 냉기(冷氣)가 흐르고 있었다.

더구나 응달진 골짜기에는 덕지덕지 백설기 같은 눈이 쌓여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렇듯 한랭기온이 가시지 않은 살벌한 고지에 노랑나비 한 쌍이 찾아온 것이다. 졸린 눈을 간신히 뜬 채 적진을 경계하고 있던 L 병사는 "아 저 나비!" 하면서 상체를 일으켜 나비를 잡으려는 순간 적의 총탄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 당시의 적은 고도로 숙련된 저격수들을 곳곳에 배치해 놓고 있어 우리의 허점이 조금만 노출되면 영락없이 공격해 오는 장기(長技)를 가지고 있었다.

찰나적인 순간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너무나도 철없는 병사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싸움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그놈의 나비 때문에 죽다니……."

 

전우들의 원망 어린 애곡(哀哭)의 넋두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 역시 "바보 같은 녀석…….“을 연거푸 뇌이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니 그 병사야말로 누구보다 시심(詩心)이 풍부했던 문학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비의 전생은 번데기다. 그는 한여름 내내 지친 몸을 추스르며 고치 속에서 안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안식이 아무리 안락무량(安樂無量)하다 하더라도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자유에는 비기지 못하리라.

불현듯 자유가 그리워진 그 병사는 전쟁 놀음에 미친 인간들을 비웃으며 그 나비들에 이끌려 애틋한 향수의 나라로 줄달음질 쳤던 것이다. 몸은 비록 전쟁이란 사슬에 매어 옴짝달싹 못 한다 하더라도 전쟁을 혐오하는 그의 마음은 벌써 두둥실 나비들과 어울려 찬란한 평화의 나라로 비상(飛上)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아... 저 나비!"를 남기고 간 그 병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시의 본질은 발견이다."라고 설파한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의 말처럼 그는 예상치 못한 '발견'을 통해 새로운 경이와 환희를 맛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 병사는 산새마저 피신해버린 황량한 전야에 평화의 여신인 양 한 쌍의 노랑나비가 너울거리는 것을 보는 순간, 자신 속에 내재한 뜨거운 감동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내면 깊숙이 침잠한 아련한 추억을 끄집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동구 밖 자드락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개나리와 산 벚꽃들, 그리고 온통 앞산과 뒷동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가 흐드러질 무렵이면 뒤곁 장다리 밭에는 수많은 나비 떼가 몰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옆집 '순이'와 장다리 밭을 헤집으며 하루 종일 그 나비 떼를 쫓던 추억이 그 순간 가슴속 밑바닥으로부터 밀물처럼 밀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 병사의 망막에 비친 한 쌍의 노랑나비는 단순한 나비가 아니라 바로 그 '순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오버랩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뜨거운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열정과 또 장다리 밭에 얽힌 수줍은 추억을 반추해 보고 싶은 그 마음 바탕이야말로 바로 영혼의 불꽃으로 달구어낸 시심(詩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봄이 물러가는 5월의 길목에 서면 나는 곧잘 그때의 상념들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 ……. 저 나비!" 이 외마디 서사시는 반세기의 시공(時空)을 격(隔)한 지금까지도 내 가슴속에서 짜릿한 감동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김병권 / 『한국수필』 2022년 5월 호). 끝.

※ 출처 : 『한국 현대수필 100년』 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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