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내가 기르던 난(蘭)

hope888 2022. 5. 31. 20:44

감꽃

매년 때가 되면 꽃을 피우며 향기를 집안에 가득 채워주던 우리 집 난이 요즘 들어 비실비실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서로 간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답답할 뿐이다. 난도 아내가 먼 길을 떠난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아내는 아들 형제를 아무 탈 없이 키워 출가를 시키자 마음이 허전했던지 하루는 친구가 주었다며 꽃이 핀 난 화분 한 개 들고 들어왔다. 초등학교 동창이 주었다는 그 난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첫눈에 들었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어느 날, 시골 허름한 한 찻집에서 시골 처녀인 아내와 처음으로 맞선을 보았다. 그때 아내는 저 난처럼, 나를 홀릴 듯이 첫눈에 반하게 만들었다.

난 화분을 들여놓고 아내는 나보다도 그 난을 무척이나 사랑하며 좋아했다. 시간만 나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들고 으레 난 앞에서 난과 교감을 하는 듯, 무엇인가를 주고받는다. 아내는 난과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남은 여생을 이야기했을까.

난과의 대화는 아내와 난밖에는 아무도 모른다.

부드러운 면포로 정성을 다해 문지르고 닦은 덕에 이파리들이 기름을 바른 것같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게 있으면 그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물어도 보고 영양제나 물주는 시기를 정확하게 맞추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난에게 온 정성을 다 기울이었다.

그러던 난이 우리 집으로 분가해온지 딱 일 년 만에 꽃을 피웠다. 올 때보다도 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초승달과도 같은 저 날렵한 몸매, 저토록 그윽한 향기, 아무리 평양 기생이라 한들 저만은 할까? 사내들의 영끝까지도 흘리려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시퍼런 사내들의 칼날도 연 가락처럼 하늘하늘 녹이고도 남을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튕기기라도 하면 거문고 소리마저 들릴 듯하다. 그 가는 허리에 작설 같은 꽃잎들이 소곤거리며 풍겨 대는 그 향기는 아파트 그 무거운 콘크리트 벽도 길을 내어주려 한다.

아내는 얼마나 감동을 했으면 마치 새 생명이라도 맞이한 듯, 윤사월 그 기나긴 해가 다 지는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댄다. 그럴 때는 단발머리 소녀 같기도 한 아내의 모습이다.

저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하나 보다. 그때는 난도 아내 같고 아내도 난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 하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행복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말처럼 그리 사치스럽고 화려하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다.

그저 작지만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사랑이면 되는 것을 예까지 오는 동안 귀한 집 딸을 데려다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시킨 것 같아 한쪽으로는 마음이 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처의 처녀가 하늘만 빤히 쳐다보이고 밤이면 산짐승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산골동네로 시집을 왔다. 막상 시집을 보니 첩첩산중이라 숨이 막혀 못 살겠다며, 시집온 지 사흘이 채 안 되어 아내는 머리를 싸매고 탈 시골을 외치며 시위에 돌입했다.

결국엔 쌀 서 말에 이불보따리와 소금 항아리 하나가 우리들 신혼살림이 전부였다. 아내의 소원대로 무작정 상경은 했지만 우리들에게 서울은 누구 하나 기다려 주지 않는 그저 황량한 벌판일 뿐이었다.

진눈깨비 맞으며 셋방을 보러 다니던 일, 동교동 철둑 밑에 방이 하도 싸기에 무턱대고 이사를 했다. 연탄도 큰맘 먹고 한꺼번에 백장을 들어놓았다. 싼 게 비지떡이라 했던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날만 흐려도 방고래에서는 샘이 흐른다. 장마가 시작되자 도랑물처럼 콸콸 흐른다. 부엌은 한강이 되고 연탄 백 장이 하나도 쓰지 못하게 죽 탕이 되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옷장이며 화장대가 방안에 까지 물이 차는 바람에 써 보지도 못하고 내다 버려야만 했다. 그때처럼 가난이라는 것이 뼛속까지 파고들 줄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 신(神)은 왜 우리를 그리도 밉게 보셨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죄가 있다면 가난하다는 것밖에는 없는데,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을 내려주시는 것 같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첫아이가 들어설 때 입덧이 왔다며 돼지 순대가 그토록 먹고 싶다고 하기에 신촌시장까지 거의 다가서 아내는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그 돈이면 우리 둘이 며칠은 살 수가 있다는 아내의 논리였다. 그 황소 같은 고집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미는 듯 아프다.

그러던 아내가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좀 살만하니까 뭐가 그리 급한지 서둘러 훌쩍 먼 길을 떠났다. 그토록 애지중지 기르던 난을 홀로 남겨두고 아주 멀리멀리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잔병치레라고는 단 한 번도 없던 난이 요즘 들어 시름시름 앓는 것만 같다. 난도 말은 못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던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렇게 떡잎이 지고 생기가 돌지 않는다. 아내가 하던 방식대로 분갈이도 해주고 아내가 보던 책을 들여다보고 물도 주며 가끔 가다 영양제도 주었지만, 난은 도무지 나으려 하는 기색이 영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고향 집 울타리 밑에는 난초가 있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난이라 하지 않고 난초라 불렀다. 얼었던 땅이 풀리면 양지바른 울타리 밑에는 난초가 제일 먼저 얼굴을 쏘옥 내민다. 한겨울 동안 땅속에 갇혀 있던 것이라 처음에는 여리고 비실비실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녀석들이 누구의 간섭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눈비를 맞으면서도 때 되면 잎이 나고 꽃을 피워 댔다. 향기도 있는 듯 없는 듯, 이파리는 뭉뚝하고 투박스럽게 생긴 것이 지금의 난에 비하면 미색이라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의 토종 난초이다.

어머니도 그 난초가 얼마나 반가우셨던지 한걸음에 달려가 호미 끝으로 난초의 주변에 흙을 긁어모아 주시면 난초는 하루가 다르게 잘도 커갔다.

그리고 한여름엔 이파리도 없이 촛대 같은 꽃대가 올라오면서 꽃을 피우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곤 했다. 그때부터 난초는 다음 해 봄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 난도 나만큼이나 아내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있는 곳에 전화를 걸려고 114로 물어보면 그곳에는 아직 미개통 지역이라 한다. 아무래도 난을 아내 곁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다. (김성열 / 『한국수필』 2022년 5월 호). 끝.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의 떡  (0) 2022.06.07
명태의 변신  (0) 2022.06.06
고슴도치 딜레마  (0) 2022.05.31
오월의 나비  (0) 2022.05.30
수의(壽衣)  (0) 202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