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놓아둔 화분에는 벌써 냉이 꽃도 피고, 달래와 부추가 올라온 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작년에 싹이 나서 한 뼘 정도 자란 단풍나무와 중국단풍은 줄기가 충전기 줄 만큼 가늘다. 추운 겨울에 얼어 죽은 줄 알았더니, 앙증맞은 연두색 잎을 벌써 달고 한들한들 인사를 한다. 흙 속 여기저기에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는 듯하여 물을 듬뿍 주었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에는 쇼펜하우어가 썼다는 '고슴도치 딜레마'를 아무 의심 없이 그런가 보다 했었다. 키르케고르도 그것을 인용해 실존적 고독 속 현대인을 설명했다고 하고 프로이트도 심리학에서 인용했다니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5년 가까이 고슴도치를 키워보니 그 말은 틀렸다. 가시가 있어 가까이 가면 서로 찔리고 멀어지면 온기를 나눌 수 없다는 고슴도치 딜레마는 '경우에 따라서'라는 조건이 붙어야 맞는 말이다.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만 벌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만남으로 무척이나 당황했던 2017년 9월 17일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생겼다. 1주일 전 '생명을 대하는 태도‘라는 주제로 초등학생들과 수업을 했는데, 여러 의견 중 반려동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학생들의 반려동물로는 강아지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고양이, 드물게 장수풍뎅이, 도마뱀, 햄스터, 고슴도치가 있었다.
"선생님은 어떤 동물 키워요?"
"선생님은 바빠서 잘 돌볼 시간이 없어서 집에서 키우지는 않고, 자연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을 사랑해"라고 대답했다.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물론이지. 하지만 동물이 장난감은 아니니까 책임을 져야잖아. 먹이 주고 똥 싼 거 치우고 그런 것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행복하게 하려면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어야 하는데 너희들 알다시피 선생님 바쁘잖아."
"그래도 선생님이라면 잘 키우실 것 같아요. 고슴도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실제로 본 적도 없으니 만져본 일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가시 때문에 안아 주지도 못할 텐데 어떻게 예뻐해 줄 수 있을까 잠깐 고민도 했다.
"귀여울 거 같긴 한데 자신은 없네."
나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전달에 오류가 있었나 보다. 선생님께 선물로 주고 싶어서 가져왔다며, 수완이가 커다란 리빙박스에 앙증맞은 나무 집과 밥그릇, 물그릇 그리고 목욕용품을 따로 포장한 것과 함께 고슴도치를 주었다.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 살인 또치를 나는 그렇게 만났다.
고슴도치는 야행성이라 내가 바쁠 때는 주로 잠을 자고 밤에 활동하니 다행히 나하고는 생활 패턴이 잘 맞았다. 하지만 바쁘다 보니 밤늦도록 일을 할 때가 많았고 시간을 내서 함께 놀아줄 짬 내기가 쉽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여자 친구를 사다가 함께 살게 했다. 지켜보니 우리네 사는 거랑 똑같다. 좋을 때 싫을 때 가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가시를 세운다는 건 뭔가 불편할 때이다. 나한테는 물론이고 서로 관계가 좋을 때는 가시를 전혀 세우지 않는다. 또치와 또순이는 각자 웅크리기는 하나 서로 몸 일부를 맞대고 잔다. 안아 주는 것도 문제없고 아프지도 않다.
특히 배에 나 있는 하얀 털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른다.
새끼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가시가 있어서 새끼들이 찔리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한 셈이다. 가시를 눕혀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젖을 먹여 키우는데 덩치 큰 아이들한테 밀리는 작은 새끼는 끌어다 안아 주고 젖을 먹을 수 있도록 보살핀다. 새끼가 그렇게 예쁜지 뽀뽀도 자주 해주고 새끼가 품에 있으면 잠결에도 입맞춤을 해주고 토닥토닥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고슴도치가 우리 또치와 또순이 같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고슴도치 딜레마‘라니 말도 안 된다.
또치를 곁에 품고 거실에 누워있으면 숨 쉴 때 나는 특유의 콧소리가 있는데 듣기 좋다. 그러다가도 옆에서 부스럭거리면 소리에 예민해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다 별일 아니다 싶으면 또 잔다. 나가고 싶어 팔다리를 버둥버둥하는 게 귀여워 붙잡고 있다가 풀어주면 기저귀 패드에 가서 대소변을 본다. 가끔 심통이 났는지 영역 표시를 하는 건지 그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가끔 공릉천 산책을 하고 아파트 주변 화단에 풀어놓으면 흙냄새 풀냄새를 맡으며 좋아한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5년이다. 한 살에 만났으니 여섯 살 할아버지다. 어느 날부터인가 부드러운 먹이를 선호하더니 걸음도 느려졌다.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신 "와 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많은 시간 행복했다"고 자주 말해 주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자꾸만 내게로 왔다. 은둔의 성향이 강한 그 아이가 자기 애착 이불에서 나와 나를 찾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도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내게 다가온 그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가 없었다. 다른 일에 눈 돌릴 짬이 없을 만큼 바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다가오는 그 아이를 내칠 수가 없다. 한 달 전부터 왼쪽 다리 힘이 없어 똑바로 못 걸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오른쪽 다리마저 그래서 옆에 있는 배변 패드까지 가는 것조차 힘겨워 했다. 두 손을 내미니 어김없이 왼손으로 올라온다. 할 수 없이 왼손으로 아이를 안고 오른쪽 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어릴 때부터 왼쪽 손목에 뺨을 대고 손바닥에 누워있는 걸 좋아했다. 맥박 소리를 들으면 안정되는지 오늘도 그런다. 너무 애처롭게 누워있어서 한시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내려놓지 못하고 오늘은 하루 내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후회할 테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자꾸만 입을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한 번씩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눈 뜨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데 그래도 한 번 더 보고 싶은지 눈을 떴다 감는다. 어느 순간 심장이 뛰지 않는다. 그 후에도 몸이 완전히 굳은 건 두 시간이 훨씬 지나서였다.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비가 내 마음에 내린다. 흠뻑 젖었다. (김선희 / 『한국수필』 2022년 5월 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