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업은 엄마 - 비양도에서
봄이 완연하다. 온전히 봄을 느끼기도 전에 여름이 오려는 듯 4월 한낮의 햇살이 따갑게 느껴진다. 올해는 일찌감치 채소밭에 심을 종묘도 마치고 밭에 퇴비도 넉넉하게 뿌려두었다.
코로나19에 걸려 출근도 하지 못하고 재택근무 중이라는 딸과 며느리, 손주들도 차례로 양성판정을 받고 격리 중이라고 했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나로서는 산골에서 살고 있으니 도시의 애들을 돌봐줄 수도 없고 전화로 목소리만 듣는다.
40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에서 정년을 1년 남긴 채 명예퇴직을 하였다.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나의 건강까지 위협했다. 퇴직한 지 1년도 안되어 시작된 코로나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세상과 단절되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도 나의 교육에 대한 열정도 모두 잊었다. 어느덧 4년째 자가격리의 산골살이를 하고 있다.
동네 아낙들이 밭둑에 앉아 나물을 캐고 있는 것 같다. 나도 풀 뽑던 호미 내던지고 집의 뒤편 산자락으로 갔다. 해마다 때를 놓쳐 억센 쑥을 뜯었는데 오늘은 연한 것이 향이 진하다. 문득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는 애들에게 쑥떡을 만들어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쑥 무더기를 만나니 반갑다. 나무의 잔가지나 억센 식물의 묵은 대가 뒤섞여 있는 틈에서 자란 연한 쑥을 뜯노라면 손이 가시에 긁히고 찔리기도 한다. 검불을 떼어내고 정갈한 쑥을 얻기 위해서 눈을 크게 떴다. 어느 지방에선 쑥을 재배하여 낫으로 베어서 대량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지만 이렇게 야생의 쑥을 얻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쑥을 뜯고 있으니 어머니가 저만치 와 계시는 것 같다. 지금이야 기계로 밭을 갈고 편리한 농기구와 개발된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어머니께서 농사짓던 힘든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바쁜 농사일 틈 사이로 쑥을 뜯어 쑥버무리와 쑥개떡을 쪄 주시던 어머니의 사랑을 이제야 느끼고 있는 내가 또한 부끄럽다. 시커먼 쑥개떡은 예쁘지도 달지도 않았다. 먹을 쌀이 없던 시절에 떡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쌀 대신 겨나 밀가루를 넣어 대충 모양을 만들어 먹었는데 그것을 개떡이라 불렀거나 떡의 모양과 색이 예쁘지 않아 '개'를 붙였던 것 같다. 그러나 쑥을 넣어 만든 떡은 일반 개떡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나절을 꼬박 집 주변의 산을 뒤적였다. 한자리에 앉아서 주변의 쑥을 다 뜯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먼저 쑥을 캐내어 뿌리는 잘라내고 줄기만 소쿠리에 담는 일이다. 가신지 45년, 막내딸은 어머니와 함께했던 20여 년의 길지 않은 세월을 캐내어 추억하노라니 반갑고도 슬펐다. 산벚꽃 흐드러지게 피어 꽃잎 날리고 저마다 독특하게 노래하는 새소리 들으며 삐죽 삐죽 나오는 고사리도 꺾어 넣었다. 골짜기 아래로 봄을 실어 나르는 세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튼실하고 좋은 쑥을 뜯는 동안 내 마음의 헛헛함도 다 사라졌다. 어느새 해도 산등성이를 넘고 쑥도 한 소쿠리 가득 되었다.
세상에는 맛있는 빵과 예쁜 모양의 떡이 많다. 팥소를 만들어서 빵처럼 속에 넣은 떡과 고물을 묻혀 만드는 떡도 있지만 내가 만들려고 하는 먹은 그런 것이 아니다. 쌀가루에 가루로 만든 쑥을 넉넉하게 넣고 소금 약간 넣어 간을 맞춘 쑥개떡을 만들 생각이다. 어릴 적에는 맛없게 느껴졌던 것도 나이 들면서 추억의 맛이 되는 것은 삶을 향한 영원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쑥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여러 번 씻어 큰 솥에 넣어 푹 삶아 담갔다가 꼭 짰다. 아침에 담가둔 쌀을 씻어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후 방앗간으로 간다. 가루로 만들어 냉동실에 나눠 넣었다가 조금씩 떡을 만들어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친절한 아저씨가 빻은 가루를 기계로 반죽까지 해준다. 집에 와서 반죽 덩이를 봉지에 나누어 담고 먹기 좋은 크기로 납작하고 동그랗게 만들었다. 베보자기를 깔고 찜솥에 푹 쪘다.
쑥은 뿌리만 있으면 절대로 죽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시 돋아나 생명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놀랍게 번진다. 도움도 되지만 해도 적지 않아서 밭에 쑥이 있다면 우선 제거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쑥이 면역력에 좋다 하니 애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코로나도 얼른 치유되고 입맛도 돌아와서 후유증도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애들이 좋아할지 모르겠다. 나도 어릴 적엔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쑥개떡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쑥개떡은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윤희 / 『한국수필』 2022년 6월 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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