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솔아 솔아 푸른 솔아

hope888 2022. 6. 13. 09:02

 

 
 

찬란한 봄빛인데, 학교생활은 어떠니? 코로나로 친구도 마음대로 못 만나고 학교 교정도 맘껏 뛰놀지 못하고……. 아마 곧 활기를 되찾을거야.

오늘은 너희들에게 우리와 동고동락하는 친구 소나무에 대해 설명해 줄게. 반평생 근무하던 직장에서 퇴임하니, 긴장이 풀려선지 건강이 안 좋아지더라. 그래서 먼 여행보다 동네 주변 솔밭이라고 불리는 소나무 공원을 들르곤 했어. 소나무가 촘촘히 들어서 있는데, 그 모습이 승천하는 용처럼 구불구불하고 기울어져 새삼스레 눈여겨보게 되었다. 태양 찾아 힘들게 살아

가며 하늘 옥상에 솔방울을 잔뜩 매단 모습이, 자식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물론 인간사처럼 좋은 환경 아래 햇볕 좋은 곳에 사는 나무들은 부채처럼 팔 벌리고 우아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곡예를 하거나 바닷가에서 고생하는 소나무들도 있어, 이들은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도 홀로 꽃을 피운 영웅들이야.

내 마음속엔 늘 백송이란 흰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 그 옛날 여고시절 교정에서 만난 천연기념물인데, 여러 가지 추억이 아로새겨진 학창시절 친구야, 그 친구에게 남몰래 감춰놓은 고민도 털어놓고 그늘 아래서 친구들과 깔깔거리곤 했어. 백송은 원산지가 중국으로 보통 소나무와 달리 수피가 어릴 땐 푸르렀는데, 나이가 들수록 백발의 노인처럼 귀티가 나서, 귀한 신분의 상징이라고 알려져 있어. 그 당시는 청춘이었는데, 요사이 다시 만나보니 양손에 지팡이 든 노인이라 안쓰럽더라.

역사 시간에 들었겠지만, 백송이 사는 북촌은 구한말 열강들 침략에 맞서 구국 활동을 하느라 선혈들이 희생된 가슴 아픈 곳이야. 백송은 수백 년 기구한 사연들을 말없이 지켜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늘은 백송의 친척 소나무를 소개할게.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늘 푸르고 씩씩하게 자라는 소나무를 보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단다.

너희들은 소나무하면 무엇이 생각날까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성삼문 시조에 나오는 '낙락장송,’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즉 제주도로 귀향 가서 고마운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 준 소나무와 잣나무 등이 생각나지? 또 정이품송이라고 하여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병 치료차 행사했을 때, 가마가 지나가라고 가지를 들었다고 하여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벼슬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번 삼척 불 사고 때 울진의 금강송을 보호하느라 한동안 야단법석이었지. 속살이 누렇다고 황장목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소나무 일등짜리야. 결이 곱고 견고하며 썩지 않은 미인송으로 선비의 풍모를 갖추고 있어. 주로 궁궐이나 종묘의 건축에 활용되고 한옥의 대들보나 임금님의 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해. 훤칠한 키에 부채처럼 퍼진 잎새는 아주 멋스러워. 특히 내뿜는 피톤치드는 심신 영양제 힐링하러 찾아들 오지.

소나무는 햇볕을 아주 좋아하는 큰 키 즉 교목이야, 지표 부근 종지나물, 민들레, 제비꽃 등 초본식물에게 명당 자리 내 주고 머나먼 길 하늘로 빛 찾아 올라간다. 요사이 지구 온난화와 재선충으로 소나무가 점점 없어지고 그 자리를 참나무가 무성하게 차지한다.

소나무는 겉씨식물로 씨방이 드러나 있는 상록 침엽나무야. 우리가 봄철에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송홧가루는 꽃가루로서, 벌이나 나비 등이 아닌 바람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지니 자연히 꽃가루를 많이 생산하게 되었어. 그 가루는 과자나 차를 만드는데 활용하기도 해.

 

퇴임하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아쉬움으로 짐을 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야 철이 들어선지 안 보이던 세상이 눈에 보이네. 점점 줄 세상, 곤충 세계, 나무들이 정겨워 쪼그리고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탄산가스를 산소로 만들고, 수해를 방지해주며, 죽어서도 거름이 되어 모든 생물의 근원이 되어준다.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지만 공존하면서 순환하는 존재니, 서로 인정하고 도와야 요사이처럼 재앙이 생기지 않겠지. 그런데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아닐까.

푸른 바다처럼 창창한 너희들도 늘 한결같고 강인한 소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이순향 / (신언필 / 『한국수필』 2022년 6월 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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