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음 달래기

hope888 2022. 6. 13. 09:20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어느 때 보다 가슴 깊이 공감이 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것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미로 암담함, 시시각각으로 목을 조이듯 다가오는 불안, 공포, 두려움 무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함께 살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불안을 호소하며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팬데믹, 무엇 하나 명쾌한 해답도 없고 세계는 전쟁의 암운이 감돌고 힘없는 아이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 지구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누구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제일 두려운 것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행사들로 만나 서로 교류하며 함께 했던 활동들이 중지되며 손발이 묶여 꼼짝 못하는 상황, 무엇이 이렇게 우리에게 무서운 형벌을 주는 것인지 너무 가혹하다.

더욱 괴로운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조차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상황,

보고 싶은 얼굴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귓가에 목소리가 맴돌아도 만질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다정한 목소리들 이보다 큰 형벌이 있을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코로나 고위험군이기에 나 스스로 통제하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거닐 듯 조심하며 지내고 있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과 부딪치며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소통하며 존재 가치를 느끼고 서로에게 재능도 나누어 주며 위로도 받고, 다른 사람이 나아지도록 돕는 일이라 믿고 있다.

늙어간다는 것은 쓸쓸하고 허무하고 초라 하지만 그래도 희망과 꿈은 늙지 않고 우리 안에 숨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이 용기이며 위안이 되기도 한다.

젊어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현장에 충실하다 보니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이제 삶이 닳고 닳아 점점 몸과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쯤, 늙어가는구나 하며 절로 한숨이 나오게 한다. 늙어서야 내가 현재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이해가 되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또다시 봄은 찾아와 세상은 온통 아름답고 고운 색깔로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듯, 화려하게 힘을 내라고 꽃길은 열어주며 손을 내밀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제 점점 푸르고 짙어 가는 숲길을 문우들과 손잡고 거닐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그 날들을 꿈꾸며 오늘도 참고 기다리며 기도하다.

어려서 어머니께서 고달플 때 푸념처럼 늘 하시던 말씀 '인생은 고해(苦海), 한평생 속고 속이며 기다리는 삶’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에서야 귓가를 스치며 깨달음으로 이해가 된다.

이제는 코로나가 많이 줄어들어 일종의 풍토병으로 독감처럼 일반 병원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 믿기에는 의심이 되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에 한숨 돌린 기분이다.

내가 어려서도 풍토병들이 있었다. 폐결핵, 말라리아, 홍역, 백일해, 천연두, 결막염 등, 지금처럼 통계적 숫자도 없었기에 얼마만큼 번지고 죽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특히 아가들이 홍역과 백일해로 세상 구경하기도 전에 저세상으로 떠났고 매일 한 집에 한두 명씩 죽어 나갔다. 하룻밤 자고 나면 아웃에서 아기들이 죽어

포대기에 둘둘 말아 엄마는 아기를 품에 안고 울면서 가고 그 뒤를 아빠가 삽을 들고 고개를 푹 숙인 모습으로 산으로 가던 슬픈 광경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다. 동네 주위 동산에는 조그맣고 봉긋하게 솟아있는 애장(아기 무덤)들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무겁고 애잔하게 해주었다. 그러기에 많이 낳아도 반타작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더욱 무서웠던 것은 천연두를 앓고 살아남으면 얼굴 전체에 깊숙이 파인 흉터 자국이 심해 초등학교 시절에 한 반에 몇 명씩 눈에 보였다. 짓궂은 아이들이 곰보라는 별명으로 놀림감이 되기도 했었다. 결막염이 유행을 타고 두 눈이 토끼 눈처럼 빨갛게 충혈되어 안대를 하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다래끼는 왜 그렇게 자주 앓았는지 병으로 시달리며 보냈던 어린 시절이 짠하면서 즐거운 추억거리이기도 하다.

전후 시대 정화되지 못한 환경으로 주변이 불결하고 물 부족으로 겨우 식수를 해결해야만 했던 시절 피부병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치료할 약도 없었고, 겨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다이아진 이란 약이 만병통치약으로 구하기조차 힘들었다. 어쩌다 우리 식구도 온 가족이 피부병에 옮겨 몸 전체가 발갛게 부어오르고 무엇보다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저녁때 온 가족이 모여 아버지께서 선두로 애들아 긁자, 하시면 피가 나도록 긁어대며 한바탕 웃고 나서 유황을 물에 타서 온몸에 바르고 몸 전체가 노랗게 변해버린 모습들에 다시 한 번 깔깔대던 순간들이, 아팠던 기억은 사라지고 따뜻했던 가족애를 느낄 수 있어서 훈훈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제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 서서히 돌아서고 있다.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고 거리에서 지인을 만났을 때, 환하게 다가오는 그대의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 있는 그날들을 기대하며, 스스로 망가지고 무너뜨린 마음 둑도 되살리고 다독이며 바른 정신으로 새롭게 맞이할 준비를 하련다. (이용 / 『한국수필』 2022년 6월 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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