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호호, 오호호호"
난생처음 들어보는 새소리였다. 딱, 네 음절씩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울음소리를 냈다. 앞 세 음절은 높이가 같고, 마지막 한 음절이 두 음 정도 뚝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다. 은왕봉 앞 능선에서 신둔사 쪽으로 가는 내리막길에서다. 낙락장송이 빽빽이 솔숲을 이루고 있는 높은 곳 그 어디에선가 의문의 새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울고 있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살펴봐도 새의 모습은 오리무중, 혼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그 새소리는 분명히 맑고 경쾌한데도, 무언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애잔함이 깔려있는 듯했다. 마침내 신라 군사들에 의해 나라가 초토화될 때, 서둘러 몸을 피한 이서고국(伊西古國)의 왕과 그 가족들이 한동안 숨어 살았다는 은왕봉(隱王峰) 앞에서 그 새소리를 들어서일까.
십여 년 전이었다. 그날 친구 넷과 함께 청도의 주산(主山)인 남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이었다. 올라갈 땐 신둔사 앞 골짜기에서 가파른 길을 치고 올라가는 가장 힘든 A 코스로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은 F 코스인 완만한 산 능선을 따라 내려왔다. 한참을 다섯 명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한동안, 나 혼자 느릿느릿 뒤처져 걸으며 깊은 골짜기의 메아리를 벗 삼아 우리 가곡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앞서가는 친구들과 합류하여 세상사 오만 이야기에 함께 끼어들었다. 이윽고 한 식경쯤 지나 신문사와 폭포의 갈림길까지 내려와, 고개 능선에서 한참을 쉬었다. 오른쪽 바로 곁에는 남산의 끝자락인 그리 높지 않은 은왕봉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는 세력이 강한 이서국이 서라벌까지 쳐들어가 신라를 놀라게 했던 역사기록이 미추왕의 죽엽군(竹葉軍) 이야기와 함께 『삼국유사』에 전해져 온다. 비운의 이서국 최후를 지켜봤던 그 봉우리는 오늘도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있다. 한참을 쉬다가 신둔사 좌측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송림(松林) 사이에서 그 새소리를 처음 들었다. 일행 중에는 아무도 그 새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태어나 예순의 나이를 지나 처음 들어보는 그 새소리, “오호호호, 오호호호”
그 새 이름은 검은등뻐꾸기였다. 제비, 꾀꼬리, 소쩍새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 철새였다. 인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에서 겨울을 난 후 봄이면 한국, 중국으로 북상하는 철새란다. 평생, 뻐꾸기라면 “뻐꾹 뻐꾹” 소리 내는 그 새만 뻐꾸기인 줄 알았는데, 이런 뻐꾸기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도 신기했다. 새 종류만큼이나 제각기 다른 새소리이지만, 그중에서도 특이한 새소리 중에 하나가 아마도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아닐까 싶다. 봄철부터 여름철까지 산속 깊은 곳에서 산다는데, 경계심이 워낙 강해 제 모습을 쉽게 보이지 않는단다. 그 뒤, 지금까지 나는 포항 보경사 골짜기, 대구 화원유원지 사문진 나루터 곁의 어느 조그만 절 앞에서까지 하여, 단 세 차례 그 새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이 새는 소리까지 듣기 어려운 멸종위기의 희귀종이란다. 그러니 언감생심 새의 모습은 더더욱 보기 어려워 인터넷 사진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검은등뻐꾸기도 뻐꾸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새들의 둥지에 탁란하여 새끼를 부화시키고, 양육하게 하는 얌체족이라 한다. 하지만 그 모두의 본능은 하느님께 부여받은 것이니, 어찌 탓할 수 있으라.
흔히 새들은 소쩍새나 뻐꾸기처럼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고 하지만, 검은등뻐꾸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새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새소리를 제각기 제 처지에 맞춰 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데, ‘첫차 타고, 막차 타고 혼자 살고 둘이 살고’ '너도 먹고, 나도 먹고' '작작 먹어, 그만 먹어"라고 듣기도 한단다. 또 스님의 귀엔 '머리 깎고, 빡빡 깎고'로 들린다고 하지만, 가장 재미난 해석은 ‘홀딱 벗고, 홀딱 벗고'란다. 어쩌면 야하게 들리는 이 해석에는 끈질긴 인간 애욕이 새소리에까지 투영된 설화가 따라붙는다.
옛날 옛적 한 젊은 스님이 절에 기도하러 올라온 자태 고운 과부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님은 번뇌를 벗어버리기 위해 주문을 외며 스스로 다그쳤다. “사랑도 홀딱 벗고, 번뇌도 홀딱 벗고, 미련도 홀딱 벗고.” 하지만 한 번 일어난 정념(情念)은 가라앉지 않았고, 스님은 끝내 마음의 병을 얻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님은 사후에 검은등뻐꾸기로 환생하여 후생들에게 나를 거울로 삼아 어리석은 생각일랑 말고 더욱 용맹정진하라고 목이 쉬도록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하며 울어댄다는 이야기이다.
검은등뻐꾸기와 뻐꾹새가 울 즈음의 산야는 그 속에 푹 파묻히고 싶도록 아름답게 변해가는 계절이다. 예로부터 검은등뻐꾸기가 울면 보리가 여물어 거둘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늘 배가 고팠던 민초들에겐 그 자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넘었음을 알리는 기쁜 소리이기도 했다. 검은등버꾸기는 그래서 '보리새‘라고도 불렸다 한다.
때늦은 봄비에 내 마음이 젖는다. 애절한 주인공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는 곁을 주지 않았다. 오늘같이 봄비 내리는 날, 은왕봉 솔숲 어딘가에서 몸을 감추고 하염없이 울어 댈 검은 뻐꾸기 생각만으로도 맑고 경쾌한 소리에 묻어있는 애잔함이 못내 서럽다. 이토록
슬픈 절창(絶唱)의 새를 탁란(托卵)의 본능으로 타고나게 하신 신의 섭리(攝理)를 이해하기란 애초에 그른 것이 아닐까. (이원호 / 『한국수필』 2022년 5월 호). 끝.
"오호호호, 오호호호"
난생차음 들어보는 새소리였다. 딱, 네 음절씩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울음소리를 냈다. 앞 세 음절은 높이가 같고, 마지막 한 음절이 두 음 정도 뚝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다. 은왕봉 앞 능선에서 신둔사 쪽으로 가는 내리막길에서다. 낙락장송이 빽빽이 솔숲을 이루고 있는 높은 곳 그 어디에선가 의문의 새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울고 있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살펴봐도 새의 모습은 오리무중, 혼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그 새소리는 분명히 맑고 경쾌한데도, 무언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애잔함이 깔려있는 듯했다. 마침내 신라 군사들에 의해 나라가 초토화될 때, 서둘러 몸을 피한 이서고국(伊西古國)의 왕과 그 가족들이 한동안 숨어 살았다는 은왕봉(隱王峰) 앞에서 그 새소리를 들어서일까.
십여 년 전이었다. 그날 친구 넷과 함께 청도의 주산(主山)인 남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이었다. 올라갈 땐 신둔사 앞 골짜기에서 가파른 길을 치고 올라가는 가장 힘든 A 코스로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은 F 코스인 완만한 산 능선을 따라 내려왔다. 한참을 다섯 명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한동안, 나 혼자 느릿느릿 뒤처져 걸으며 깊은 골짜기의 메아리를 벗 삼아 우리 가곡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앞서가는 친구들과 합류하여 세상사 오만 이야기에 함께 끼어들었다. 이윽고 한 식경쯤 지나 신문사와 폭포의 갈림길까지 내려와, 고개 능선에서 한참을 쉬었다. 오른쪽 바로 곁에는 남산의 끝자락인 그리 높지 않은 은왕봉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는 세력이 강한 이서국이 서라벌까지 쳐들어가 신라를 놀라게 했던 역사기록이 미추왕의 죽엽군(竹葉軍) 이야기와 함께 『삼국유사』에 전해져 온다. 비운의 이서국 최후를 지켜봤던 그 봉우리는 오늘도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있다. 한참을 쉬다가 신둔사 좌측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송림(松林) 사이에서 그 새소리를 처음 들었다. 일행 중에는 아무도 그 새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태어나 예순의 나이를 지나 처음 들어보는 그 새소리, “오호호호, 오호호호”
그 새 이름은 검은등뻐꾸기였다. 제비, 꾀꼬리, 소쩍새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 철새였다. 인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에서 겨울을 난 후 봄이면 한국, 중국으로 북상하는 철새란다. 평생, 뻐꾸기라면 “뻐꾹 뻐꾹” 소리 내는 그 새만 뻐꾸기인 줄 알았는데, 이런 뻐꾸기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도 신기했다. 새 종류만큼이나 제각기 다른 새소리이지만, 그중에서도 특이한 새소리 중에 하나가 아마도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아닐까 싶다. 봄철부터 여름철까지 산속 깊은 곳에서 산다는데, 경계심이 워낙 강해 제 모습을 쉽게 보이지 않는단다. 그 뒤, 지금까지 나는 포항 보경사 골짜기, 대구 화원유원지 사문진 나루터 곁의 어느 조그만 절 앞에서까지 하여, 단 세 차례 그 새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이 새는 소리까지 듣기 어려운 멸종위기의 희귀종이란다. 그러니 언감생심 새의 모습은 더더욱 보기 어려워 인터넷 사진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검은등뻐꾸기도 뻐꾸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새들의 둥지에 탁란하여 새끼를 부화시키고, 양육하게 하는 얌체족이라 한다. 하지만 그 모두의 본능은 하느님께 부여받은 것이니, 어찌 탓할 수 있으라.
흔히 새들은 소쩍새나 뻐꾸기처럼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고 하지만, 검은등뻐꾸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새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새소리를 제각기 제 처지에 맞춰 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데, ‘첫차 타고, 막차 타고 혼자 살고 둘이 살고’ '너도 먹고, 나도 먹고' '작작 먹어, 그만 먹어"라고 듣기도 한단다. 또 스님의 귀엔 '머리 깎고, 빡빡 깎고'로 들린다고 하지만, 가장 재미난 해석은 ‘홀딱 벗고, 홀딱 벗고'란다. 어쩌면 야하게 들리는 이 해석에는 끈질긴 인간 애욕이 새소리에까지 투영된 설화가 따라붙는다.
옛날 옛적 한 젊은 스님이 절에 기도하러 올라온 자태 고운 과부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님은 번뇌를 벗어버리기 위해 주문을 외며 스스로 다그쳤다. “사랑도 홀딱 벗고, 번뇌도 홀딱 벗고, 미련도 홀딱 벗고.” 하지만 한 번 일어난 정념(情念)은 가라앉지 않았고, 스님은 끝내 마음의 병을 얻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님은 사후에 검은등뻐꾸기로 환생하여 후생들에게 나를 거울로 삼아 어리석은 생각일랑 말고 더욱 용맹정진하라고 목이 쉬도록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하며 울어댄다는 이야기이다.
검은등뻐꾸기와 뻐꾹새가 울 즈음의 산야는 그 속에 푹 파묻히고 싶도록 아름답게 변해가는 계절이다. 예로부터 검은등뻐꾸기가 울면 보리가 여물어 거둘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늘 배가 고팠던 민초들에겐 그 자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넘었음을 알리는 기쁜 소리이기도 했다. 검은등버꾸기는 그래서 '보리새‘라고도 불렸다 한다.
때늦은 봄비에 내 마음이 젖는다. 애절한 주인공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는 곁을 주지 않았다. 오늘같이 봄비 내리는 날, 은왕봉 솔숲 어딘가에서 몸을 감추고 하염없이 울어 댈 검은 뻐꾸기 생각만으로도 맑고 경쾌한 소리에 묻어있는 애잔함이 못내 서럽다. 이토록
슬픈 절창(絶唱)의 새를 탁란(托卵)의 본능으로 타고나게 하신 신의 섭리(攝理)를 이해하기란 애초에 그른 것이 아닐까. (이원호 / 『한국수필』 2022년 5월 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