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투리가 필요해

hope888 2022. 5. 14. 09:28

감자 수제칩

 

 수제 칩을 만들었다. 명절 끝에 손이 잘 가지 않는 과일에 대한 처방이다. 정갈한 손질 한두 번이면 진품이 되는 건 시간문제, 갈수록 재미가 붙는다. 받는 사람에 따라선 잗다란 것일 수 있어 포장에 공을 들인다. 소분 봉지마다 색색의 리본을 묶고 색한지 쪼가리에 손편지를 적는다. 그대 향한 마음이 새콤달콤한 사랑이 되었다고

신통하다. 뒷전에 밀려있던 자투리들이 불려 나와 제 몫을 했다고 눈웃음을 친다. 어느 결엔가 자취를 감추어도 몰랐을 소소한 나부랭이들, 없어도 그만일 뻔했던 자투리들 잔치를 앞에 놓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에게서 오는 물건에 버리기가 아까운 것들이 많아 꼬맹이 상자서 부터 진기한 것이면 칸칸이 모아 둔다. 별것도 아닌 것에 집착한다며 좁쌀이 되어간다고 농을 거는 옆지기. 이것이 귀한 세상인 걸 알고나 하는 말씀인지 모르겠다. 아직은 곰상스럽고 싶은 아낙의 맘을 남자가 알 턱이 없다.

내 유년은 자투리에 친숙했던 시절이었다.

할아버지가 자주 쓰시던 연장통에 녹슬고 구부러진 못이 가득했지만 장도리로 살살 펴주면 큰 말뚝에 잘도 박혀 신기하기만 했다. 콩 낟가리며, 밭가 말뚝을 칠 때도 내가 골라 드리는 대못은 일등 재활용품이었다. 감자 수확이 끝나면 할머닌 새알만 한 잔챙이까지 모아서 뽀얀 감자가루를 만들었고 함부로 버려지는 법이 없는 농가 부산물은 소쿠리나 함지박에 담겨 손길을 기다리기 마련이었다. 땀 흘려 거둔 농작물 모두 귀한 것이었기에 그 먹을거리들을 먹고 자라 무탈했는지도 모른다.

다섯 남매 입성을 재봉틀로 해결했던 엄마는 반짇고리에 포플린 자투리를 모아 두었었다. 야문 솜씨에 눈썰미가 좋았던 언닌 천 조각 하나하나를 이어 밥상보와 홑이불을 만들었고 우린 분홍 꽃무늬의 주머니를 만들어 공깃돌과 구슬을 넣고 다니며 놀았다. 다섯 살 터울의 언니가 지녔던 미적 감수성은 시대를 앞섰던 선견지명이었지 싶어 어린 날을 소환해올 적이면 별리의 그리움에 눈시울이 뜨겁다. 가끔씩 바늘과 실꾸리를 들추는 것도 그런 날들에 길들여진 명징한 기억 때문이 아닌지.

조각 천의 인기가 날로 높아가는 추세이다. 앙증맞은 장식품에서 침구에까지 그야말로 쓰임새가 무궁무진이다. 자투리 취미 교실이 성황을 이루고 이용 분야도 다양하여 손재주를 부리고픈 여인들의 로망이 가경을 연출하고 있다. 자투리 천 사랑이 이처럼 폭발적일 줄을 누가 알았으랴.

4차원 문명의 진입으로 개벽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렇담 거대하고 매머드 화된 문물만이 각광을 받는 것일까, 시공의 벽이 허물어져 불가능이란 없다고 믿는 세상이지만 자투리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도시계획이다 토지 구획정리다 하여 구석으로 밀려난 틈새 땅이 골칫거리라던 때는 아니라고 본다. 눈여겨보지 않던 비좁은 공간이 아이디어 창출에는 적격이라지 않는가.

대여섯 평 땅이 개성 강한 설계자에 의해 명품 건축물로 등장하는가 하면 두세 평의 극소형 공간이 창의성을 발현하는 기발한 모티브가 된다니 의외의 반전이다.

도회를 벗어나 보면 논두렁 밭두렁에 몸을 비빈 강낭콩이며 호박넝쿨을 본다. 땅 한 평을 갖지 못해도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느껴지는 건 한 뼘 땅에서도 너울너울 생명을 이어가는 흙의 섭리가 주어졌기 때문인 것. 주인 없는 공터가 꽃밭이 되고, 나무 그늘에 의자 몇 개만 놓아도 쉼터가 되는 곳. 맘만 먹으면 만인을 위한 틈새 자리가 위안이 되니 땅을 소유하지 못했대서 절망할 일은 아니지 싶다.

시간을 따져보아도 그렇다. 5G 통신의 발달로 정신없이 바빠진 현대인들이 언제 어디에서든 문화 콘텐츠를 즐기게 되었다. 시간을 따로 투자하지 않고도 최상의 지식을 얻고 정보의 바다에서 원 없이 유영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라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다. 촌음을 천금처럼 아낀다면 어느 분야이든 무진장 퍼낼 수 있으니 노다지요. 횡재가 아닌가. 틈새 시간이 마술을 부리는 스마트폰에 업혀 기상천외한 세계로 드나들며 특권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크기에 따라 가치를 매기는 시대는 지났다. 하찮아 보이는 것에도 우주의 섭리가 숨 쉰다고 하였던가. 몸을 낮추면 선 자리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와 작은 하나의 의미를 헤아리게 된다. 미미한 것들을 기꺼이 품을 줄 알아야 큰 것을 지닐 자격이 있다는 말로 새겨들을 일이다.

자투리란 의미는 심오하고도 너르다. 마름질에서 잘려 나간 천 조각 하나, 쓸모없을 줄만 알았던 자투리 공간, 바삐 사는 사람들의 틈새 시간이며,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던 푼돈이 사막에 우물을 파고 꺼져가는 목숨을 살리는 현장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스스로를 자투리 인생이라고 자책하는 이들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은 말을 준비해둔다. 때가 되지 않아 미처 제 자리를 찾아가지 못했을 뿐, 이 세상을 제대로 돌아가게 할 금싸라기 주인들은 바로 그대들이라고 …. (이문자 / 『한국수필』 2022년 5월 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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