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야기

성령세례 받는 법 5 – 성령 세례를 받는 법 2

hope888 2022. 6. 2. 10:43

 

 

 

 

3) 셋째,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라.

 

세 번째 단계는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베드로는 그의 청중에게 '회개하라' 라고 말한 다음, 그들에게 '세례를 받으라'라고 말했다. 마음으로 하는 회개로는 부족했다. 회개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필요한데, 회개를 고백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바로 세례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청중 가운데에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사도행전 2장 3절에서 베드로가 의미한 세례는 물세례이다). 그런데 이미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의 경우에도 물세례가 상징하는 것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경우에도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령세례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숨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음으로만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애쓴다.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죄를 버렸다고 믿지만,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받을 수 없다. 혹자는 "물세례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퀘이커 교도들도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느냐?"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물론 퀘이커 교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교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무지 때문에 성경을 다소 잘못 이해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진실하기만 하다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성경의 교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세례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퀘이커 교도라 할지라도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물세례가 상징하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4) 넷째,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라.

 

네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이미 앞에서 한 말, 즉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주로도 믿어야 한다는 말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것은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행 5:32)라는 말씀에서도 분명히 언급된다. 순종! 이것이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네 번째 단계이다.

그렇다면 순종은 무엇인가? 혹자는 우리가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이 순종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대로 행하되 '얼마만큼' 행해야 하는가? 순종은 한 가지,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를 행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모든 것들을 행하는 것이다.

순종은 의지(意志)의 문제이다. 순종의 본질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순종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가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값을 주고 저를 사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합니다. 저 자신과 저에게 속한 모든 것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저를 보내소서. 저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저를 사용하소서" 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가장 결정적 단계이다.

구약의 예표들의 경우, 온전한 번제가 전부 제단 위에 올려지고 희생 동물의 안팎에 남겨진 것이 전혀 없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제물을 받아들이고 태워버렸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의 예표들은 지금 영적으로 모두 적용된다. 온전한 번제인 우리 자신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우리의 그 무엇도 우리 것으로 남기지 않을 때, 하나님의 불이신 성령께서 영적 성소(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제단 위의 제물을 받으신다

(구약에서 성막의 지성소는 '하늘' 을 상징하는 예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나의 모든 것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오랫동안 불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 이런 절대적 순종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의 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방들의 열쇠 대부분을 하나님께 넘겨드렸지만, 어떤 작은 방의 열쇠는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않는다. 그 결과, 성령세례는 임하지 않는다.

언젠가 워싱턴 D. C에서 신앙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의 마지막 날 밤에 나는 성령세례를 받는 법에 대해 설교했다. 그날 밤 성령의 강한 능력이 임했다. 집회가 끝날 때 국회 담당 목사가 내게 "오늘 밤 성령께서 이곳에 임하신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집회가 끝난 후 나는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던 중 두 시간이 흘렀을 때, 그러니까 11시쯤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내게 와서 "저기 오른쪽을 보십시오. 지금 저기서 W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젊은 여자가 보입니까?" 라고 말했다.

"예, 보입니다."

내가 말했다.

"w양이 그녀를 돕기 위해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데, 혹시 목사님이 가서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그녀의 좌석 뒤로 가서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느냐고 물었다.

"아! 예, 나는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볼티모어에서 왔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는 볼티모어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당신의 뜻을 하나님 앞에서 다 포기했습니까?"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금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포기하게 만드시기를 원합니까?"

"예, 원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제 의지(意志)를 꺾어주십시오. 제가 저의 뜻을 굽힐 수 있도록 도우소서. 저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게 하소서. 제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게 하소서."

그녀의 기도가 끝났을 때 나는 “이제 당신의 의지가 꺾였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했습니다. 예, 저의 뜻이 꺾였습니다.“

"하나님께 성령세례를 구하십시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 제게 성령세례를 허락해주소서”라고 간단히 기도했다. 얼마 후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표정과 마음이 평안으로 넘쳐 있는 게 보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자기 뜻을 굽히고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고, 하나님은 성령세례의 복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5) 다섯째, 성령세례를 간절히 원하라.

 

다섯 번째 단계는 성령세례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7:37-39).

여기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라고 덧붙이신다. 그분이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사 443)라는 구약의 약속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 틀림없다. 요한복음 7장 37절과 이사야서 44장 3절의 두 구절에 근거하여 판단하건대, 목마름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목마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심한 갈증을 느낀다면, 마치 그의 몸의 모든 털구멍이 "물!물!물!" 이라고 외치는 것 같을 것이다. 이것을 영적인 것에 적용하여 말하자면, 만일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목마르다면 그의 온 존재가 "성령! 성령!" 이라고만 외칠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오직 성령께서 이루실 수 있는 것을 성령께 구하지 않고 그 대신 무엇인가 색다른 교회 분위기, 화려한 교회 시설, 웅장한 음악, 설교자의 인기 등에 의지하는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할 것이다. 교묘한 성경해석법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신약에 적용하면서 "모든 신자들은 자동적으로 성령세례를 체험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을 수 없다. 실제로는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다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받겠다고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성령세례에 아주 근접한 사람이다.

언젠가 나는 YMCA 신앙대회에서 성령세례를 주제로 설교를 했다.

두 명의 목사가 나란히 집회 장소를 빠져나가더니, 그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저 강사의 주장은 결국 사람들을 광적 신앙으로 이끌거나 아니면 절망으로 이끌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그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인용하지 않았다. 그는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찔렸으나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대신 그는 마음이 찔림 받는 것에서 도피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성령세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간절히 원할 때까지는 성령세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목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똑같은 교파에 속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목사도 있었다. 내가 노스필드에 있을 때 그가 어느 주일 오전에 나를 찾아왔다. 그날 오전에 나는 성령세례를 받는 법에 대해 설교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이렇게 노스필드까지 찾아온 것은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그것은 물론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고 내 교회로 돌아갈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형제님, 당신은 성령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가 내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저는 아침 기차로 떠납니다. 이렇게 찾아온 것은 제가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다. (R.A. 토레이 / 『성령세례 받는 법』 / 규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