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야기

성령세례 받는 법 7 - 성령 세례를 받는 법 4

hope888 2022. 6. 2. 16:26

 

 

하나님의 순서는 언제나 동일하다. 첫째는 그분의 말씀이고, 둘째는 그 말씀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고, 셋째는 우리의 체험 내지 감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순서를 바꾸고 싶어 한다. ,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알고, 그 다음에 느끼고, 그 다음에 믿으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계시의 말씀을 믿을 것을 요구하신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3:6)라고 분명히 밝힌다(15:6). 아브라함은 그의 몸으로 새 생명과 능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감정은 그후에 찾아왔다. 하나님은 옛날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라. 내가 약속한 것이 너희의 것이라고 믿어라. 왜냐하면 바로 내가 약속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따라 우리가 믿을 때 장차 우리에게는 느낌이 생기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8) 성령세례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우리에게 주어지는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도 모든 것이 그것을 받기 전과 똑같은가? 만일 모든 것이 똑같다면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성령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는가? 잘라 말하건대, 성령세례를 받으면 분명한 징후가 주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 징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징후가 언제 주어지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성령세례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언제 주어지는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믿은 후에 주어진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인 후에 주어진다.

그렇다면 성령세례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징후는 무엇인가? 바로 이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다. 그들은 찰스 피니, 존 웨슬리, 무디 같은 사람들의 놀라운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위대한 사역자들은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았을 때 놀라운 감각적 체험을 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피니는 "성령세례를 받았을 때 마치 나는 강력한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손을 거두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이 자리에서 죽을 것 같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무디도 이런 체험을 했다고 때때로 털어놓았다. 이 사람들이 이런 체험을 했다는 것을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말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그들이 체험한 것과 같은 체험이 성경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사실 나는 사도들이 이런 체험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체험을 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체험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런 기록이 성경에 있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들과 똑같은 체험을 하려고 난리를 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신자들에게 실제로 주어진 징후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의 일을 수행하게 해주는 새로운 능력이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 일어난 일에 대해 성경은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2:4)라고 기록한다.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일과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성경의 기록도 이와 유사하다. 사도 바울의 성령세례 체험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9:17)가 전부이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안수를 한 다음에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안수와 세례를 받은 바울이 한 일은 무엇인가? 그는 즉시 각 회당에서 성령의 강력한 능력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9:20-22).

신약의 도처에서 우리에게 기대하도록 가르치는 성령세례의 징후, 그리고 실제로 사도들에게 주어진 성령세례의 징후는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새 능력과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역시 이런 성령세례의 징후를 기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성령세례의 징후를 찾기 위해 지나치게 애쓸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그것을 구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징후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것인지를 결정하셔서 일하실 것이다.

 

9)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혹자는 "사도들도 열흘 동안 기다리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우리도 열흘 또는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사도들이 왜 열흘을 기다려야 했는지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밝힌다. 사도행전 21절에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 라고 기록되어 있다(이 부분을 직역하면 "오순절 날이 성취되고 있을 때 ……." 이다). 오순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구약에서, 아니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안에서 오순절 날은 성령의 오심과 교회의 모임을 위해 이미 작정된 날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날이 온전히 이를 때까지는 성령이 주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열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순절 날이 도래한 다음에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431절에서 무리가 성령 충만을 받을 때에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그들이 모인 곳이 진동했고 그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했다. 고넬료 집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때에도 역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서 처음으로 복음에 대한 설교를 들었는데, 설교의 절정에서 베드로가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10:43)라고 말할 때 그들은 믿었고,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 (10:44)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와 그곳 사람들에게 성령세례에 대해 말해주고 그들과 함께 기도했을 때에도 그들은 기다리지 않고 성령을 받았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그곳 사람들에게 회개에 이르는 요한의 세례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성령세례도 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그들은 기다림 없이 성령을 받았다. 그들이 그때까지 얼마 동안 기다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성령세례라는 것이 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성령세례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다린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속 사역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기다린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죄를 버리지 않거나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기다린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분명히 구하고 믿고 받아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기다린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 때문이다. 나의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지금 이 책을 내려놓고 내가 이제까지 말한 조건들을 충족시킨다면 즉시 성령세례를 받을 것이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절대 그것을 말리지 않겠다. 성경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40:31)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데 마땅히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오늘날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을 앙망할 때 성령의 부어주심을 거듭 체험했다는 것을 나는 기꺼이 증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우리가 조건들만 충족시킨다면 즉시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성경과 체험을 통해서 증명된 사실이다.

믿음으로써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감정적 체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우리의 오순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몇 주, 또 어떤 사람들은 몇 달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몇 년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에 대해 비성경적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징후들이 일어나야만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이 근거 없이 주장하는 '특정한 징후들'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이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받으면 반드시 방언이라는 징후가 나타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성령세례를 사모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감정적 황홀경(ecstasy)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다.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충족시킨다면 우리는 반석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즉시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

목회를 하던 중 언젠가 나는 성령세례를 받고 내가 그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기 전에는 결코 설교단에 서지 않겠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도 다시 설교단에 설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그분 나름대로의 방법을 통해 내게 설교단에 서라고 말씀하실 때뿐이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나는 서재에 틀어박혀 날마다 하나님께 성령세례를 달라고 간구했다. 나는 사투를 벌였다. 그러던 중 '주일까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일이 되었는데도 내가 설교단에 서지 않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궁금증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처음 결심을 버리지 않았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이러저러한 징후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조성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세례는 내가 예상했던 그런 방식으로 임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하나님께 간구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조용하고 차분한 순간 중 하나가 찾아왔다.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세례의 복은 너의 것이다. 이제 가서 말씀을 전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만큼 성경을 알았다면 서재에 틀어박힌 첫날 성경말씀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가진 성경지식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연약함을 굽어보시고 그분 자신을 무한히 낮추셔서 내 마음에 직접 말씀하셨던 것이다. 내게는 특별한 황홀경()이나 흥분이 주어지지 않았고, 단지 '성령세례의 복이 내 것이다' 라는 조용한 확신이 주어졌다.

그후 나는 사역을 다시 시작했고, 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다음(정확히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는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서재에 다시 앉아 있을 때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그곳에서 성령세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갑자기 나는 무엇에 강하게 얻어맞은 듯 의자에서 서재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 이라고 소리쳤다.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어떤 다른 능력이 나의 입술과 나의 모든 인격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본래 나는 흥분을 잘하거나 히스테릭한 성격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쉽게 감동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나의 절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때껏 살아오면서 나는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 자신을 절제할 수 있을 때에 나는 아내에게 가서 내게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다. 지금 내가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나의 체험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체험이 내가 성령세례를 받는 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얘기를 꺼낸 것이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은 때는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세례의 복은 너의 것이다. 이제 가서 말씀을 전하라" 라고 말씀하신 그 조용한 시간이었다.

 

10) 구름에 구멍을 낸 기도

 

나는 과거의 어느 날 오후에 있었던 일을 앞으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89478, 노스필드 학생 신앙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오전에 나는 교회에서 성령세례를 받는 법에 대해 설교를 했는데, 12시 무렵에서야 설교가 끝나가고 있었다. 사실 그전에 무디가 오후 3시에 산에 올라가서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한 상태였다. 시계를 본 나는 "여러분, 지금 12시 정각입니다. 사실 무디가 오늘 오후 3시에 산에 올라가서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3시까지는 세 시간이 남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3시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텐트이든, 호텔이나 건물에 있는 여러분의 방이든, 저 밖의 숲 속이든 어디로든 가십시오. 혼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하나님께 그것을 구하십시오."

3시에 모두 456명의 사람들이 무디의 어머니 집 앞에 모였다. 동부에 위치한 대학들에서 온 남자들이었다. 우리는 산 중턱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올랐을 때 무디가 "더 이상 올라갈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멈춥시다" 라고 말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무디가 "혹시 누군가 할 말씀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대략 일흔다섯 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일어나 말을 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의 요점은 "나는 3시까지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 하나님 앞에 나아갔으며, 결국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을 마쳤을 때 무디가 "우리가 여기서 무릎을 꿇고 오순절 때에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임하신 것같이 지금 우리에게도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떤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 솔잎에 얼굴을 묻었다.

사실 그전에 우리가 산 중턱을 오르고 있을 때 산 위로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했을 때는 그 구름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나무들 가지 사이로 떨어졌다. 그런데 우리 위에는 이 구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자비로 가득한 또 다른 구름이 열흘 전부터 노스필드의 하늘로 몰려들고 있었는데, 우리의 기도가 이 구름에 구멍을 냈고, 이 구멍을 통해 성령의 비가 우리 위에 쏟아졌다! 정말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이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라도 지금 혼자서 이런 복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말한 일곱 가지 단계를 다 챙긴다면 성령이 그 사람 위에 임하실 것이다. (R.A. 토레이 / 성령세례 받는 법/ 규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