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

1센티 인문학 1 - (도스토옙스키)

hope888 2022. 6. 8. 08:46

도스토옙스키 동상

    

1. 입진보 귀족의 유배 생활

 

1) 귀족 집안의 자식이다.

2) 24세에 쓴 데뷔작으로 벼락스타가 되었다.

3) 병역도 마쳐 남자 아이돌들의 최대 고민인 '백기'가 없다.

 

어쩌라고?

남은인생 탄탄대로

 

도스토옙스키Dostoevsky의 이력이다. 그는 당시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토론 클럽에 참여해 생시몽, 푸리에 등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 '진보' 노릇도 했다. 그러다 잡혔는데 죄목이 무시무시하다.

'범죄 음모에 가담하고 교회와 권력을 비난했으며 반정부 문서

들을 퍼뜨리려 했다.‘

''진보라서 입만 처벌할 줄 알았는데 총살이란다.

18491222, 수도 페테르부르크의 세묘노프스키 광장, 두건을 쓴 도스토옙스키는 군인들이 총알을 장전하는 동안 28년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살 수 있다면 삶의 단 1초도 낭비하지 않을 텐데.'

 

처형 직전에 황제가 보낸 특사가 난입한다. 그의 을 시베리아 유배 4년으로 깎아준단다.

모든 게 쇼였다. 감형은 훨씬 전에 결정되었다. 사형 집행 몇 초 전에 알림으로써 황제의 은혜가 무의식까지 박히도록 설계한 심리극이었다. 죽음에서 살아난 이들의 반응에 즐거워하던 황제의 관음증도 한몫했다.

무의식은 모르겠으나 이 과정에서 미친 사람이 여럿 생겼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때 얻은 간질로 평생 고통 받는다.

어쨌건 유배를 마친 그의 고백이다.

'집을 지으라면 상당수 죄수들은 그 일에 빠져 열심히 시간을 견뎌낸다. 하지만 이쪽의 돌무더기를 저쪽으로 옮긴 뒤, 다시 이쪽으로 옮기고 또 저쪽으로 옮기게 하고, 이 일을 매일 반복하면 죄수들은 스스로 목을 매달거나 어떤 식으로든 삶을 놓아버린다. 무의미한 노동, 결과 없는 노동은 죄수에게 최고의 고문이다.'

'그럼에도 찬란한 영혼들이 있었다.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자들이, 교육받지 못하고 핍박만 받은 자들이 시베리아 시궁창에서 쓰레기처럼 밟히면서도 풍요로운 감성과 정신의 빛을 발휘할

때가 있다.'

 

이 빛을 발견한 도스토옙스키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히 변한다. 시베리아 유배지는 영혼을 정화하는 장소로 그의 문학에 등장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무언가를 배운 유일한 심리학자다. _니체

 

그는 셰익스피어와 견줄 수 있다. _프로이트

도스토옙스키는 어떤 과학자들보다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_아인슈타인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다 들어 있다. _커트 보네거트

모든 소설가들이 쓰고 싶은 궁극의 소설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_무라카미 하루키

삶에 절망이 올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 _헤르만헤세

톨스토이가 큰 산인 줄 알았는데 뒤로 물러서서 보니 그 뒤엔 도스토옙스키라는 거대한 산맥이 있었다. _앙드레 지드

 

그런데 궁금하다. 다시 살아난 도스토옙스키는 단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살았을까?

원고료를 대부분 도박장에서 날린 것으로 보아 그는 시간은 물론 돈 낭비도 했다. '노름꾼'이란 작품을 쓰기 위한 자료조사였다면 할 말 없지만.

 

2. 똥꼬 가려운 도스토옙스키(사회주의리얼리즘)

 

1397년 출생자 중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이도, 즉 세종대왕이다. 거의 완벽한 인물이지만 국내용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두 번째 인물은 진정한 월드클래스, 구텐베르크다. 미국 주간지 <타임>이 그를 'A.D.1000~1999년까지 인류에게 최대의 영향을 끼친 인물'로 선정했을 정도다.

구텐베르크는 1450년대 중반 라틴어로 된 성경 180부 정도를 금속활자로 인쇄했다. 150부는 종이, 30부는 값비싼 양피지에 인쇄했다. 한 쪽에 42줄을 인쇄해 '42행 성서'라 불리는 이 성경은 현재 49권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42행 성서>를 보유해야 '월클 도서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42행 성서1454년 프랑크푸르트 도서 시장에서 순식간에 매진되는데 이때부터 엄청 비싼 책이었고 20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책이 된다. 1978년 경매에서 240만 달러에 팔려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1987년 경매에선 540만 달러(한화 약 123억원)에 일본 게이오 대학에 팔렸다. 덕분에 아시아에선 일본이 유일하게 (42행 성서를 보유하고 있다. 한 쪽씩 거래되기도 하는데 대략 1억 원 정도에 팔린다.

1,282쪽 중 한 쪽도 유실되지 않은 완벽본은 17권이다. 이중 양피지에 인쇄된 보물 중의 보물은 4권에 불과하다.

양피지만큼은 아니지만 종이본도 보물 중의 보물이다. 가공할 한파가 덮친 지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 <투모로우>에서 뉴욕 국립도서관으로 피신한 주인공 일행은 책을 불태워 체온을 유지한다. 수많은 책들을 불태울 때 도서관 사서가 끝까지 보호한 책이 <42행 성서. (그는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국가 도서관 역시 <42행 성서>를 보유하고 있다. 단테, 코페르니쿠스, 다윈을 비롯한 수많은 지성들의 초판본과 함께 도스토옙스키의 친필 원고도 소장하고 있다.

게다가 249개 언어로 된 4,300만 점의 소장 자료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다. 이런 도서관 정문에 동상을 세운다면 어떤 인물이 어울릴까? 후보는 두 명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

공산주의 소련 시절 원탑은 톨스토이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대변자로 숭상 받았다. 반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둘 다 부정하고 '인간 내면 문제'를 파고들었던 도스토옙스키는 '프롤레타리아의 삶에 좁쌀 한 톨만큼의 도움도 안 되는 자'로 멸시받았다. 전체주의 사회는 원래 이렇다. 정치, 경제, 사회, 언론뿐만 아니라 문학까지 통제하려고 한다.

어쨌든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중 선택된 사람은?

레닌Lenin', Ladimir IIIch이다. 원래 독재 정권은 이렇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부활하자 도스토옙스키 역시 부활한다. 1997년 모스크바 건설 850주년 기념일, 레닌 동상을 치운 자리에 마침내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이 들어선다. 바실리 페로프Vasily Grigorevich Perov 가 그린 <도스토옙스키의 초상>(1872)을 토대로 러시아 최고 조각가 알렉산드르 루카비슈니크가 만들었다.

그런데 러시아 시민들이 충격에 빠졌다. 소설가 막심 고리키Maxim Gorky 의 말마따나 '진정한 예술은 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었기 때문이다.

구부정한 어깨에 힘없이 늘어진 팔, 의자 끝에 살짝 걸터앉은 구부정한 자세, 세상 고민은 홀로 떠안은 표정, 과장은커녕 대문호의 초라한 모습에 러시아인들의 불만과 혹평이 쏟아졌다.

"치질 환자냐?"

똥꼬가려운 노인이네."

 

사람들은 신화를 원했지만 예술가는 진실을 구현했다. 이래야 예술이다.

사회주의는 무너졌지만 러시아인들이 사회주의 문화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조이엘 / 1센티 인문학/ 언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