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그랜드마 모제스 Grandma Moses, 즉 모제스 할머니는 78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23년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그녀는 1,600여 점을 남겼다. 매주 1.3점의 그림을 그린 셈이다.
놀라운 것은 100세에서 101세까지 그린 그림이 무려 25점이라는 것이다. 늦게 시작하더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면 우리도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물론 모제스 할머니가 78세 때 처음 그림을 접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해서 과일즙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잘 그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의 벽난로 덮개에 그림을 그려주곤 했다. 할머니는 67세에 홀로되고 자수를 떠서 살아가다가 78세에 동생이 붓을 선물한 것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그림을 동네 약국 주인의 권유에 따라 약국에 전시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뉴욕의 미술품 수집가의 눈에 띄게 되면서 그녀는 유명해지게 되었다. 사람 팔자는 알 수 없다. 촌 동네의 나이 많은 할머니가 80세가 넘어 미국 전역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1960년 뉴욕 주지사는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모제스 할머니의 날'로 선포했다.
모제스 할머니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70세에 선택한 새로운 삶이 이후 30년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그랜드마 모제스라고 하니 본명이 그랜드마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본명은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제스 Anna Mary Robertson Moses이다. '감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박삭.......처럼 이름이 길어서 장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존 최고의 장수사회인 일본을 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한 예로 요즘 일본은 나이가 들어 환갑이 다 된 사람들이 문단에 처음 등단하곤 한다. 젊을 때의 문학도 꿈과 인생의 연륜이 더해져서 색다른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후지사카 가즈오는 74세에 일본 최고 권위인 군조신인문학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박병희 씨는 올해 74세로 2년 전에 한국미술협회의 서예부문 초대작가가 됐다. 2002년부터 붓을 잡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에 입선 2회, 특선 1회, 우수상 1회를 수상했다. 매일 3~4시간씩 서예에 매달린 결과다. 이제는 서울 송파구청의 서예 강좌에서 서예를 가르친다. 사람들에게 붓글씨를 써주면 좋아한다. 이러다 보니 좋은 사람과도 만나게 되어 인간관계가 넓어졌다. 내친김에 77세가 될 때는 작품을 모아 개인전을 열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목표가 생기자 생활은 훨씬 활기차졌다. 경륜이 쌓일수록 글의 가치가 높아진다. 모제스 할머니처럼 101세까지 글을 쓴다면 27년이나 남았다. 평생직장을 27년 다녀도 적게 다닌 게 아닌데 지금부터 27년을 더 글을 쓰고, 그리고 13년 배운 것까지 합치면 붓을 40년 잡는 셈이 된다.
기술을 가지고 노후까지 생활하는 것이 진기한 일인 것 같지만 앞으로 장수사회에서는 일상사가 될 것이다. 통영에 가면 옻칠공예가 있다. 조개껍질을 붙여 옻칠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옻칠 공예작품도 많다. 나무 컵에 옻칠을 해서 파는데 옻칠을 하면 벌레가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물맛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컵뿐 아니라 반상, 젓가락, 숟가락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옻칠한 나무 하나가 8만 원 정도 하고 반상 세트는 50만 원쯤이다. 문하생들이 옻칠 공예를 배우고 있는데 작품을 만들고 팔 수 있으려면 대략 2년을 해야 한다. 2년 투자한 시간과 돈 치고는 수지맞는 것 같다.
노후를 위한 기술투자는 장수사회에 적합하다. 기술에 투자한 만큼 돈을 벌어야 수지가 맞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비용/편익 내지는 투입산출 분석으로 내가 투자한 비용에 비해 얼마를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개인이 자신에게 투자하여 기술자가 되려고 할 때도 이 기준이 적용된다. 장수사회에 기술 투자가 수지맞는 이유를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수명이 짧은 단수국과 수명이 긴 장수국長壽國이 있다. 수명이 짧은 단수국은 60세에 은퇴해서 67세까지 일을 하고 70세면 세상을 떠난다. 반면에 수명이 긴 장수국은 60세에 은퇴해서 90세까지 일을 하고 100세에 세상을 떠난다. 기술을 익히는 데는 두 나라 모두 3년이 걸리고, 기술을 익히는 데 드는 비용은 1년 생활비라고 하자. 3년간 기술을 익히는 동안 노후의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기회비용도 감안하자. 그리고 기술을 익히고 사업을 시작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자.
단수국의 경우 64세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여 67세까지 3년 동안 3년치 생활비를 번다. 대신에 1년치 생활비를 기술에 대한 투자비용으로 날리고 3년을 일하느라 놀지 못해서 그만한 기회비용이 발생했다. 그 결과 2년치 생활비만큼 돈을 벌었고 3년의 기회비용만큼 비용이 발생했다. 이익이 없다. 이런 조건이면 단수국 사람들은 기술에 투자하지 않고 모아둔 생활비로 여생을 보내는 게 더 현명하다. 10년 정도의 여생이면 여행도 다니고 못 해본 것을 하기에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수국 사람들은 60세에 은퇴해서 64세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여 90세까지 26년을 번다. 1년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투자비용과 놀지 못하고 배움에 투자했던 3년 기회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수지맞는 장사이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장수사회는 단수국에서 장수국으로 이민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고도 장수국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장수시대에 기술은 3년 투자해서 30년 버는 수지맞는 장사다. 기술을 익히고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장수시대에 우리가 제일 먼저 실천해야 할 일이다. (김경록 / 『1인 1기』 / 더난출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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