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

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1 - 나이 들어서도 사이좋은 부부가 되려면

hope888 2022. 5. 30. 08:52

 

 

 

최근에 집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고령의 부부가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은 천천히 걸으며 길가의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보기도 하고 새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도 했다. 꼭 온화함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는 산도 있었고 골짜기도 있었을 텐데 그 위기를 부부가 함께 극복하고 노년에 들어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주 멋져 보였다.

주변 부부들을 보면 신혼 당시에는 행복감이 넘치다가 40대가 되면서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온다. 아내는 남편의 둔감함에 질려 버리고 남편은 아내의 행동이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한다. 서로 이야기할 시간의 여유도 없고 화를 내는 사이에 마음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다음은 20년쯤 전에 편집자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그 편집자가 근무하던 출판사가 발간하는 잡지에서 소설을 공모했는데, 우수작을 선정해서 상을 주고 단행본으로도 발간했다. 그런데 다양한 내용의 원고 중 미스터리 소설에서 대부분 한 가지 경향이 나타났다고 했다.

"살해당하는 피해자가 거의 주인공의 아내예요."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항상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응모된 원고를 읽어 보면 아내가 사건에 휘말려 죽는 설정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아내가 희생될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무리하게 지워 버리는 느낌이 드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남성 응모자가 많았다고 한다. 남편이 실제로 그런 죄를 지을 수는 없으니 적어도 소설에서만이라도 아내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컴퓨터가 지금처럼 일반적이지 않던 시기여서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경우도 있었지만 손으로 직접 써서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원고지를 보면 아내가 죽는 장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종이에 가해진 압력이 큰 것이 느껴졌어요."

그중에서는 자신의 마음이 지나치게 드러나 중간부터 아내(妻)를 끝까지 글자가 비슷한 '독(毒)'으로 쓴 원고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비슷한 글자인 '보리'와 헷갈린 원고는 없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아내를 죽이고 후련해 했겠죠."

편집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고를 쓴 남편은 분명 즐거웠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상보다도 아내가 사라지는 소설을 쓰는 것이 더 의미가 컸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몰래 울분을 풀어야 나이가 들어서도 사이좋은 부부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모습을 곁눈으로 보면서 남편은 '지워 버렸다.' 하고 몰래 득의에 찬 웃음을 짓는다. 소설의 완성도는 어떻든 간에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리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하는 남편의 노력에 미혼인 나는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무레 요코 / 『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 경향 BP). 끝.